DAY 1

Feb 12 2018

오늘의 날씨: -1 / -5, 살짝 쌓인 눈인 줄 알았는데 오후되어 함박눈

구미역

대한민국KR

천안역

대한민국KR

군산역

대한민국KR
시작부터 다사다난한 군산행

빨리 나가라고 성화인 부모님께 시간 다~ 보고 있다고 빽빽 우기며 느긋하게 밖에 나왔더니 살짝 쌓인 눈 탓인지 택시가 유독 없었다. 카카오 택시 부르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웬걸, 갑자기 렉 걸려서 터치는 커녕 종료조차 안 되는 거다. 약국 전화를 빌려 내 폰에 전화를 걸어 해결하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택시 승강장에 서 계신 분께 핸드폰을 빌려 카카오 택시도 불러봤지만 답해주는 기사님이 없었다.

결국 핸드폰을 구매한 대리점으로 무작정 걸어가 직원분과 각고의 씨름 끝에 강제 종료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재부팅하고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금세 택시가 왔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미 기차는 떠나간 시간이었다는 것?

피같은 수수료 약 8,000원을 지불하고 가장 빠른 다음 기차로 예매했다. 환승지인 천안에 40분이나 머물러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불효의 업보라고 생각하자. 우째도 기차 탔으니!

생각해보니 혼자서 여행을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온갖 도전은 다 해본 척 해놓고 사실은 게을러서 새장 안에 갇힌 돼지 꼴이었지. 왠지 떨리는 마음 때문에 책 한 권을 두 번씩 읽은 걸로 모자라 채만식이며 최무선이며 고은이며 부지런히 찾아보고 읽으며 밤을 꼴딱 새버렸다. 어제보다도 추운 날씨덕에 정신이 번쩍 들어 한파가 다행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몽롱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밤을 새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지만, 정신이 흐릿할 때 보는 일몰도 그 나름대로 기대가 된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마지막으로 기차에서 보려고 아껴뒀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봐야지. 시나리오가 수능 모의고사 지문으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영화인데도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해 놓고 이제야 보게 됐다.

천안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눈이 오는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주희네 어머님께서 주희를 통해 여행에 대한 걱정을 전해오셨다. 여기저기 가려던 계획이야 어그러졌지만, 날씨가 여행의 흥과 개성을 돋워주는 요소라는 것을 모르는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나는 태평하게 눈과 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는 카메라가 개발되기를 빌면서, 이영춘 가옥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천안역에서 닝닝하지만 개운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마시지도 않은 술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끼고 나니 나의 여행이 목적없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납작한 완숙 계란과 다섯 개 남짓 딱딱한 떡이 역 안의 깔끔한 분식집 그 자체를 음식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캐리어가 생각보다 가벼워서 좋고, 얼어죽을만큼 추운 게 아니어서 좋고, 화장와 옷이 어울려서 좋다. 여관에서 체크인 하고 나면 다시 더러워지더라도 신발을 깨끗하게 닦아낸 다음 밖에 나가야지. 너무 졸려서 집중이 안 되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잠시 중단. 극의 호흡도 미장셴도 캐릭터도 너무 아름답고 내 취향이다. 왓챠플레이나 넷플릭스같은 서비스의 장점은 마음 먹은 만큼 긴 시간동안 그 영화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이 한여름이 아닌 것이 아쉽다.

점점 더 눈발이 심하게 날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깼는데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던가, 왠지 화들짝 놀라서 캐리어를 내려 후다닥 문을 열었는데 기차는 꿋꿋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황해서 반대쪽 문인줄 알고 반대쪽으로 뛰어가다가 깨달았다, 아, 시계를 먼저 봐야지. 그리고 차 뒤편에서 날 보고 당황한 아기와 힙한 패션의 여성분 동그란 눈 두 쌍이 딱! 보였다. 빈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되더라.

"아, 아직 한참 남았구나."
"어디 가세요?"
"군산이요."
"한참은 아닌데."
"한 20분 남았는데, 아 제가 자다 깨서 너무 당황을 했어요."

내 자리 아닌 뒤편이 텅 비어있어 그냥 그곳에 앉아 너무 당황했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뒤 꽁무니라도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았을 걸

갈색 곰돌이 털옷을 입은 사내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나를 흘끗흘끗 보며 씩 웃었다 얼굴을 숨겼다 하는데, 통통한 눈두덩이와 발그레한 볼은 애교가 가득했다. 나랑 하이파이브를 세 번쯤 하고 장항에서 내린 아이를 보는데, 내리기 한참 전에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냐고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늦은 때여서 이제는 사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마자 찍자고 다짐했다. 애꿎은 눈만 여러 컷 찍었는데, 마음에 담기는 사진은 없었다.

화담여관

대한민국KR

타코야끼

대한민국KR

테디베어뮤지엄 군산

대한민국KR

동국사

대한민국KR

한일옥

대한민국KR

대창약국

대한민국KR

꽃에 꽂히다

대한민국KR

화담여관

대한민국KR

화담여관은 예쁘고 깔끔하지만 다소 불친절하거나 추울 수 있다는 후기 그대로였다. 만날 일이 적어 불친절한 면모를 자세히 보거나 할 일이 없었고, 수건 두 개와 침구는 뽀송하고 난방도 온풍기로 신경썼지만 건물 자체가 조금 서늘한 감이 있었다.

테디베어 박물관은 처음이었다. 테디베어는 귀여웠지만 다소 집중도가 떨어졌다. 귀여운데 짜임새가 부족한 느낌. 게다가 군산에 있다고 하여 안내 팻말을 참고해서 세계와 군산의 근현대사를 테디베어로 표현한 줄 알았건만 근대사와 관련성은 한 2% 남짓 될까?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안내 표지판에 쓰여진 내용을 토대로 낸 문제를 풀며 관람을 하는데, 흥미롭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많은 내용을 읽어내야만 하기 때문에 곰돌이들은 다시 한 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학생 이하 어린 아이들에게는 흥미유발도 되고, 곰돌이도 열심히 볼 수 있을 구성 같았다.

관람은 아시아관-아프리카 및 유럽관-아메리카관-군산관-아트갤러리-기념품샵 순이었는데, 동선은 매우 잘 짜여 있었다. 군산관 이전의 경우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테디베어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다. 근대사라기 보다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를 장면으로 보여주는 느낌인데, 첫 번째 나오는 한국의 대표가 해운대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피상적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얕기 때문에 쉽게 각인될 수 있을 것 같다.

군산관의 경우 군산근대역사문학거리에서 다루는 근대사를 짧게 보여준다. 아트갤러리는 유명 인물화 등을 테디베어로 바꿔 콜라주 하듯 붙여 표현해낸 작품들과 오래된 세계 각국의 테디베어 스무 여점, 세계에서 가장 비싼 테디베어인 루이비똥 테디베어의 홀로그램 등이 전시되어있다.

사실 가장 구경할 만한 곳은 기념품 샵이다. 2만원에서 7만원 정도 하는 온갖 종류의 테디베어들이 데려가달라고 유혹한다. 이곳에서 이제까지 전시를 보며 스마트폰으로 폰 문제의 점수를 보여주면 점수에 해당하는 소소한 선물을 준다. 나는 만점을 받아 핫팩을 받았다.

테디베어 박물관을 구경하고 슬슬 걸어 도착한 동국사는 내가 군산에서 이영춘 가옥과 더불어 가장 기대한 곳이었다. 이영춘 가옥을 못 가게 되어 오늘 하루 갈 일정으로 냉큼 이곳을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국사는 내게 인생 최고의 겨울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동국사에서 오늘 완벽히 영화 주인공이었다. 배우고 깨달았으며, 감동하여 머물렀다. 동국사를 보기 전 염려했던 것들은 모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동국사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부터 눈이 심하게 내렸다. 우산을 살까 고민하며 걸었는데, 정말 우산이 필요해졌을 땐 이미 편의점이 너무 멀었다.

초입의 풍경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단순하고 애매해보였다. 단청의 색칠도 없고 지붕의 곡선은 모자라보였으니.

그런데 입구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동국사 뒤편의 산을 막아선 일본식 대나무 숲과 일본식 사찰의 조화가 숨막히게 다가왔다. 그 아래 사찰이 안고있는 고즈넉한 정원이란! 기와와 댓잎의 조화 위에 하얀 눈이 소복히 내려 마치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말을 안 하면 일본식 사찰인 줄 모르겠다던 어느 블로그의 후기가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일본에 간 적 없는 나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왜 굳이 비행기를 타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그곳에도 이런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었다.

동국사의 아름다움을 완성해주는 '반성'의 마음

매년 반성의 마음을 가진 일본인들이 군산을 찾아 참회하는데,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동국사를 찾아온 불교 신자들이다. 그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한 수탈을 인정하고, 이를 잊지 않고자 비석을 세웠다. 동국사는 반성하는 일본인들과 이들의 참회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순수한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에 오싹할진대, 더욱 백미는 바로 대웅전 내부였다.

내가 본관에 들어갔을 땐 마침 직원분이 문을 닫으려 할 때였다. 나는 양해를 구해 혼자서 약간 어두컴컴한 대웅전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상이다. 일본식을 갈아치운 흔적들이 뒤편 그림에도 여실히 들어났다. 익숙한 신들의 모습은 한국식 절을 닮아있었고, 책에서 읽은대로 일본식의 모빌을 닮은 금 장식만이 생소한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천장을 보니 문과 같이 격자모양이었다. 본 적이 전혀 없느냐고 하면 아닌데, 이렇게까지 색이 없이 단정한 천장은 사찰에서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더 오묘한 것은 이 천장이 익숙한 연등들로 빼곡히 메워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익숙한 것들과 조금 낯선 것들의 조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익숙한 모양의 방석과 익숙한 사찰의 냄새가 문 바로 옆에 있는 피아노의 이상함을 상쇄시킨 것 같다. 본래 기둥 받치는 부분을 모양을 내 조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복잡한 모양이 아니라서 단순해 보였지만 되려 조각한 모양을 처음 보아 화려해보이기도 했다.

눈을 조금 돌려 천장과 기둥 사이.
'이게 란마구나!'
검색해보지 않아도 책에서 계속 말한 것이 이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건축에서 본 적이 없던 것이었으니까. 천장에 간격을 두고 창처럼 내었는데, 창을 나무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보아도 일본의 양식이었다.

란마까지 보고 대웅전 문을 보는데, 나는 오른편에서 들어왔건만 불상과 마주보는 큰 격자무늬 문이 보였다. 줄 지어 늘어선 의자 뒤에 커다란 미닫이 문이 있었는데, 외부에서 직접 보이는 문이었다. 일본식 가옥에서 문을 열면 바로 정원이 보이는 그림이 바로 연상되었다.

이쯤 되자 소름이 돋았다. 책장에는 한국식 불경과 노트가 정신없이 꽂혀있고, 피아노와 책장 사이엔 임재범이 나가수 퍼포먼스를 위해 들고 왔던 커다란 북이 자리해있었다. 모든 물건들이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놓여있던 것처럼 보였는데, 그 물건들보다는 당연히 오래된 건축 자재들과 이질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무서운 마음을 가지고 다 본 곳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더 돌아보고 살펴보고서야 밖으로 다시 나왔다.

동국사 외관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 2명씩 다섯 여팀의 사진을 찍어주었으니, 정말 오래 있기는 했다. 세어보니 어림짐작하여 2시간 쯤은 된다. 추위 때문에 몸은 2시간임을 퍼뜩 인정하였으나 마음은 20분밖에 안 된 것처럼 다시 또 몇 번이고 동국사 곳곳을 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고은 시인이 쳤다던 종이 그렇게 크게 내 마음을 두드리지 못한 것은, 내가 눈과 대나무를 좋아하는 것이지 일본 문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최근 성추행 파문 때문일까. 종은 매우 치졸하고 야비하게 루의 천정에 달라붙어 있었다.

얼어죽기 전에 꼭 국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점심으로 라면을 먹어서 더 이상 면은 먹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한일옥을 가기로 결정했다.

오 분 가량 헤매서 20여분만에 한일옥에 도착했다. 바로 무우국을 주문하니 앉자마자 반찬과 공깃밥이 나오고, 2-3분 뒤에 바로 무우국이 나왔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벌건 소고기무국만 익숙하기 때문에 뿌연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무, 파, 소고기 조각만 글어있는 이 맑은 국이 다소 낯설었는데, 상상한 맛 그대로인데다가 너무 깔끔해 밥을 제대로 말지도 않고 따로, 거의 맑은 상태로 한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모주도 한 잔 했다.

무한리필이라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다시 확인차 검색 후 바로 밥과 국을 한 그릇씩 더 주문하고 처음처럼을 시켰다. 첫 번째 그릇은 거뜬한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그릇은 다섯 그릇째의 잔치국수같은 느낌이었다. 소주 반 병도 비우고 나니 몸이 따뜻하고 배가 빵빵했다.

어두워진데다 사람이 없어 길이 무섭다는 생각은 했어도 길을 잃을 줄은 몰랐는데, 스마트폰을 들고도 두세 번은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나는 길치가 맞다.

해매는 길에 샤니 씨에게서 전화를 받아 길을 모르는데도 무작정 걷다보니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그 길에서 만난 것이 바로 '꽃에 꽂히다'라는 꽃집이었다. 아주 아름답고 풍성한 곳이었다. 사지 않을 수가 없지. 종종 이렇게 3,000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가 된다.

샤니 씨에게 다음 학기 공부를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전하고 끊은 뒤 망설임 없이 들어가 꽃을 샀다. 내일 과일과 더불어 꽃 선물을 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 내일 다시 생각해야지.

튤립을 들고 오는 길은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다행히 눈에 익은 길이 보여 게스트하우스를 금세 찾았다. 나 빼고 모두가 참여한 파티 장소를 지나 따뜻한 물로 오래 씻고, 오는 길에 산 쌍화탕을 먹으려다 다 식어버려 이 후기를 다 쓴 뒤에 데워먹기로 한다.

쌍화탕 사면서 산 여드름 패치를 잔뜩 붙이고 얼마나 좋나 보자고 산 신상 팩도 붙였다. 다른 부분은 우여곡절이었지만 동국사 하나 때문에 오늘은 올 겨울의 날들 중 최고의 날이 된다. 행복감이 밀려오는 침상에서, 쌍화탕 하나 먹은 뒤에, 최고로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DAY 2

Feb 13 2018

오늘의 날씨: 4 / -1, 바닷가에도 바람이 많지 않고 쌓인 눈이 녹아 질척함

화담여관

대한민국KR

이성당

대한민국KR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대한민국KR

구 일본 18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미술관)

대한민국KR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대한민국KR

부산어묵군산본점

대한민국KR

군산세관

대한민국KR

진포해양테마공원

대한민국KR

영인칼라현상소

대한민국KR

레인보우스위트앤티

대한민국KR

노조미생라멘 본점

대한민국KR

히로쓰 가옥

대한민국KR

명산시장

대한민국KR

1930 그카페

대한민국KR

DAY 3

Feb 14 2018
Share to SNS
Link copied.
Paste it some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