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Jan 07 2019

스무 살, 그리고 영국. 나에게는 두 단어에 대한 동경 혹은 환상 같은 것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그 놈의 스무 살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스무 살이 되어서 해보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스무 살이란 자유와 성장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그냥 스무 살이 오지 않기를 조금은 바랬던 것 같다. 설레고 신나는 것보다 슬픔이나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다. 내 십대가 완벽한 시기도 아니었고 행복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나에게는 이제 이 시기를 그리워할 날들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나에게 꽤나 큰 슬픔이 되었다. 막상 스무 살이 되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스무 살'이란 단어가 쓰여져있는 모양도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였다. 미래를 하나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론 사람을 두렵게 만들지만 또 그만큼 기대하거나 설렐 수 있게 만든다. 모른다 에서 오는 은근한 기대감과 스릴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가. 스스로에게 억지로 이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난 스무 살에 대한 공포보다는 차라리 환상을 가지고 있는게 낫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꿈만 같았던 스무 살이 현실이 된지 일주일 쯤 흘렀고 어쩌면 학창 시절의 도착지라 할 수 있는 대학에 정시 지원을 마친 나는 꿈에 그리던 영국에 가게 되었다.

어릴 적 전 권을 다 읽어봤을 만큼 좋아했던 만화책이 보물찾기 시리즈다. 나는 유독 가보고 싶었던 나라의 책만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영국'이었다.

시간이 지나 '노팅힐'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고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을 때처럼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리 대단한 스토리도 그리 대단한 장면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두 영화는 자꾸 보고 싶은 매력이 있다. 두 영화에 나오는 장면과 그 장소 하나 하나가 모두 나에게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내가 그 노팅힐의 서점에 발을 딛을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데 곧 그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하나, 영국 배우에게서 나오는 그 매력적인 영국식 발음은 나에게 영국에 대한 환상을 몇 배 더 증폭시킨 촉매라고 볼 수 있겠다. 유튜브에 올라온 셜록 영상을 보면서 어찌나 감탄을 했던지. 무언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런 기분 탓 일지 모를 느낌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환상이 많은 여행은 실망할 일이 많을 듯 싶어 최대한 내 마음을 비우고 떠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스무 살, 그리고 영국.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짐을 싸다보니 앞으로 12일 정도는 못 볼 그가 벌써 보고 싶다. 내 꿈의 나라였던 영국에 간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더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와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갈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며 짐 싸는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와는 앞으로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함께 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가족 모두가 함께할 여행은 많을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새삼 이번 여행의 무게감 같은 게 느껴졌다. 가족 모두가 배려하고 노력해서 문제없이 이번 여행을 좋은 추억으로 남게 한다는 그런 무게감 말이다. (큰 부담은 아니다. 서로 더 배려하고 긍정적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필요한 것이 이런 부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와선 꼭 그와 계획했던 여행을 가고 말겠다 다짐했다. 나는 새벽 5시에 터미널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야하지만 이미 새벽 2시는 되어야 잠에 들 수 있는 수면 습관에 긴장감까지 더해져 쉽사리 잠에 들긴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DAY 1

Jan 08 2019

비행기 탑승 후 얼마 되지 않아 잠에 들었다. 내가 눈을 뜬 건 30분이 지나 이륙할 때 였는데 이륙 시작과 함께 내 긴장도 시작되었다. 귀도 막히고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며 비행기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비행이 시작되고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지만 꽤 많이 흔들려서 머리도 조금 아팠다. 영화를 보다가 몇 분 뒤 기내식이 나왔는데 치킨과 소불고기 쌈밥 중 후자를 골랐고 영화를 보며 먹었는데 너무 너무 맛있었다. 아빠가 멀리서 나를 봤는데 너무 맛있게 쌈을 잘 싸먹길래 치킨 고른 아빠도 쌈밥이 먹고 싶어졌다고 했다.

비행기 좌석은 외국인 남자 두 명 가운데에 껴서 가는 데다 바로 앞이 아이 두 명이 앉아있었는데 비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계속 크게 울고 의자도 너무 많이 내린데다가 똥을 바지에 쌌는지 냄새도 계속 나고 소란스러워서 불편하고 더 피곤했다. 두통이 심해져서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자려고 했는데 앞에 아이가 또 울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 힘들고 피곤한 비행이었다. 겨우 겨우 한 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아는 형님을 보면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내식을 먹었다. 김치볶음밥과 치킨 중 김치볶음밥을 선택했는데 맵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너무 맛있었다. 당근케이크도 같이 나왔는데 맛있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렇게 착륙을 하고 공항이 한가한 덕에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밖은 눈 돌리면 벤츠가 보이고 익숙하지 않지만 간지나는 번호판들이 보였다. 건물들도 너무 멋있었다. 어서 빨리 밝을 때 이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다. 공항 픽업 기사님 덕에 숙소에 잘 도착했고 숙소 안내자와의 긴 대화 끝에 정리와 안내가 끝났다. 숙소는 나름 마음에 들었다.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것과 화장실이 조금 불편해서 한국이 그리워지게 만들지만 이것도 지내다보면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다. 숙소에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한 후 우리는 마켓을 찾아 나섰다. 구글맵 덕분에 금방 찾은 마켓에서 간단히 물, 빵, 베이컨, 주스를 사고 돌아왔다. 무단횡단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영국과 나는 좀 잘 맞는 것 같다.(ㅋㅋㅋㅋㅋ) 게다가 길을 잘 외우는 스타일이라 고작 마켓 왔다 갔다 하는 거지만 현지인 마냥 익숙하게 숙소로 잘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영어로 소통을 잘한다 ! 문법은 모르겠고 그냥 쉬운 단어로 어찌어찌 말해서 상대를 이해시키는 걸 잘 하는 것 같다. 가족들도 인정했다. 일단 한 시름 놨다.

DAY 2

Jan 09 2019

새벽 3시 반 (영국) 다리에 쥐가 난 채로 잠에서 깼다. 제일 싫어하는 기상 방법이다. 종종 그런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운동 부족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 잠에 들었으니 수면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다시 잠 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배도 조금 고파서 어제 산 빵에 치즈를 올리고 주스와 함께 먹었다. 베이컨도 먹고 싶었는데 굽기 귀찮았다. 엄마가 차를 꼭 마셔보라고 해서 차를 끓이고 빵 하나를 먹으니 아빠가 잠에서 깨셔서 베이컨을 구우셨다. 그래서 슬쩍 나도 베이컨을 먹었다. (ㅋㅋㅋㅋㅋ) 동이 틀 때 까진 핸드폰을 하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DAY 3

Jan 10 2019

4시간 30분동안 기차를 타고 도착한 에딘버러 ! 도착해서 본 에딘버러는 굉장히 흐렸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한식당을 찾아나섰다. 와이파이 신호 자체가 잘 안 잡히는 기차 안에서 꾸역꾸역 찾은 한식당 맛집이다. 진짜 김치찌개가 너무 너무 맛있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작가 j.k. 롤링이 해리포터 원고를 쓴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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