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Feb 13 2017
봄아 안녕

봄아 안녕. 엄마 아빤 인천공항에 왔단다. 함께 첫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말야.

엄만 중학생 때 가족들과 함께 터키여행을 가다가 네덜란드에서 환승을 하려고 하루 유럽엘 들렀다던데, 아빠는 첫 유럽여행이라 마음이 많이 떨려. 말은 통할까. 사고는 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가장 많이 드는 걱정은 열흘의 시간이 짧지는 않을까. 많은 준비를 한만큼 후회가 남지 않는 여행이 되어야 할텐데. 어떨지 모르겠구나.

엄마 아빤 인천에서 밤비행기를 타고 상해에서 환승을 해서 파리엔 내일 새벽 도착할 예정이야. 엄마가 받아보던 중국 항공사 메일을 통해 티켓을 구매했는데 덕분에 왕복 50만원 짜리 티켓을 구했어! 아마 넌 상상도 못할 가격이겠지? 네가 커서 처음 파리에 갈 땐 어떤 비행기를 타게 될까. 그 비행기에서 이 편지를 읽고 있을까?

그 사이 비행기 시간 탈 시간이 되었대. 또 편지할게!

인천국제공항

대한민국KR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

중국CN

DAY 2

Feb 14 2017
하늘에서 보는 낮의 사막은 어떨까

엄마 아빠의 파리여행 계획이야. 꽉찬 글자들만 봐도 얼마나 이번 여행을 기대하고 있는지 잘 알겠지? ^^

아빤 엄마와 처음 만났던 중국 만주여행, 엄마랑 지선 이모와 다녀온 베이징 여행이 해외여행의 전부라 이번 파리 여행이 첫 장거리 여행이야. 너도 알다시피 엄만 지독한 '파리병'을 앓고 있잖니? 그래서 아빠의 소중한 안식월과 엄마의 방학을 파리에서 보내기로 한 건 정말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단다.

짧은 상해에서의 환승 이후 파리까지는 운 좋게도 에어프랑스를 타게됐어! 13시간이 걸린다던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하나 걱정이야. 프랑스인처럼 보이는 스튜디어스는 내게 작은 꼬냑병을 쥐어주더라. 마시고 푹 자라는 뜻이겠지....하지만 아빤 너무나도 설레 잠이 오질 않아 모니터로 몇 번이나 비행기 항로를 돌려봤단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를 지나다니! 아쉽게도 밤이어서 창밖엔 어둠 뿐이지만 다음 번엔 꼭 사막과 러시아의 낮을 보기로 마음 먹었어.

하나 둘 잠이 들자 아빤 앞에 붙은 모니터로 센과 치히로, 럭키를 보기로 했단다. 아쉽게도 다른 영화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ㅠㅠ 봄이 넌 꼭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해. 아, 너가 영어를 공부할 때쯤 되면 이미 동시통역기가 발명되어서 더이상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

중국CN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프랑스FR
파리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샤를드골 공항의 창 밖은 검푸른 새벽공기로 가득했단다. 어두운 창 밖과 밝은 공항 복도, 알 수 없는 불어로 가득찬 광고판이 한데 어우러져 이게 현실인가 싶었지.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어. 그렇지만 금방 정신을 차려야만 했어. 우리에게 열흘간 머물 숙소를 제공해주기로 한 한나이모가 등교도 미룬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거든.

한나이모 알지? 엄마 고등학교 친구. 마침 한나이모는 파리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 우린 그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에펠탑에 가장 가까운 한 곳에서 머물기로 했단다.

파리 시내로 가는 공항철도 안에서 엄마는 조금 무서워 했어 ^^ 새벽 기차 안에는 남루한 차림의 덩치큰 외국사람들만 몇몇 있었는데 치안이 좋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걱정했었거든. 동양인 하나 없는 넓은 지하철이 어찌나 휑해 보이던지.

그런데 파리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더라. 새벽을 먼저 여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울이나 파리나 다르지 않았어. 아빤 금새 마음이 포근해지더라.

파리, 새벽, 지하철

두 번의 지하철 환승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 미리 찾아본 여행 후기에서 파리 지하철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본 파리 지하철역의 모습은 상상 속 파리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버렸지. 좁고 오래된 역사, 코 끝을 찌르는 알 수 없는 지린내, 청소를 언제 했나 싶도록 새까만 떼가 묻은 바닥, 먼지자국이 얼룩덜룩한 벽타일. 너도 언젠가 파리 지하철을 탄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걸 ^^

생각보다 작은 지하철이 뒤뚱뒤뚱 플랫폼에 들어서면 직접 손잡이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출근길 인파 속을 뚫고 지하철에 올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지하철에 캐리어를 들고 탄 동양인은 엄마와 아빠 둘 뿐이더라. 누가봐도 여행온 동양인 젊은 커플. 그래도 다들 낯선 풍경인지 눈길 하나 주는 사람 없더라.

사람들은 모두 아침의 피로를 이기려는 듯 눈을 감거나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해. 모든 승객이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의 지하철 풍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야. 지하철은 1분이면 다음 역에 도착하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버튼을 눌러 문을 열지.

한국의 깨끗하고 넓은 지하철, 자동으로 여닫히는 문, 안전한 스크린도어, 편리한 휴대전화 인터넷. 파리의 지하철에선 모두 찾기 어려운 것들이야. 왜 파리의 지하철은 이런 모습일까? 파리 사람들은 편리함과 청결을 포기하는 대신 무엇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우린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지하철 얘기를 할 기회는 많을테니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 ^^

아침 7시 30분. 드디어 숙소가 있는 Ecole Militaire 역에 도착했어.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지하철 계단을 캐리어를 끙끙대며 끌고 올라오자 드디어 파리 시내가 모습을 드러냈어. 회색빛과 파아란빛이 덧칠된 도시와 새하얀 수증기, 생각보다 작은 거리가 드디어 마주한 파리의 첫 느낌이야. 겨울의 파리에게 따뜻함을 바란 건 욕심이겠지? ^^

숙소로 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엄마와 아빤 기왕 가는 것 조금 돌더라도 에펠탑을 보기로 했어. 왠지 에펠탑을 마주해야 파리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역을 나와 조금 걷다보니 어렵지 않게 에펠탑을 찾을 수 있었어. 에펠탑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말랐더라.

우린 캐리어를 끌고 에펠탑을 향해 걸었어. 불과 얼마 전 파리 테러가 있었던 탓인지 공원 주변엔 철제펜스가 드리워져 있었고 에펠탑은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더라. 마침 아침 산책 나온 파리시민들과 그들의 다양한 애완견들이 우릴 반겨줬어. 그들이 없었다면 차가운 탑과 공기가 우리 마음을 더 얼려버리고 말았을거야.

어렵게 한나이모와 연락이 닿아 도착한 숙소 앞은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주택가였어. 5-6층의 건물들과 하얀 테라스, 작은 창문들, 마치 주변의 모든 건물이 호텔 같달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파리의 젊은 어머니와 마주치기도 하고 바게트를 사서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어. 금새 조금씩 내리던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빛이 에펠탑을 밝게 비춰주더라.

30분을 기다렸을까. 기다렸던 그 집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ㅠㅠ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우린 얼른 지도를 찾아 한나이모가 알려준 위치로 다시 걷기 시작했지. 약국과 과일가게, 마트, 좁은 골목을 지나 한 건물 앞에 다가서자 밝게 웃음짓는 한나이모를 만날 수 있었어. 한국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 반갑더라 ^^

특별한 파리의 엘리베이터

한나이모를 따라 커다란 갈색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복도가 우릴 반겼고 복도를 지나 한번 더 문을 열자 작은 로비와 엘리베이터가 나타났어. 아마 봄이 넌 상상도 못할거야. 1인용 엘리베이터라니!

캐리어를 들고 겨우 한 명만 탈 수 있는 크기의 엘리베이터. 그마저도 철창처럼 된 이중문 중 하나는 직접 손으로 닫아야만 해. 처음엔 한나이모가, 그 다음엔 엄마, 마지막으론 아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어. 거기가 우리가 열흘간 머물 숙소였거든.

책에서 본건데 파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세기에 지어진 것들이 골격을 유지하고 있대. 이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데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건물 안에는 공간을 찾을 수 없었던거지. 그래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엘리베이터를 만들게 됐고 그렇다보니 1인용 엘리베이터들이 만들어졌다는거야. 신기하지? 한국이었다면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부수고 새로 만들었을텐데 말야. 어쩐지 파리의 건물들이 다 붙어있어서 마치 한블록 한블록이 하나의 성 같더라 ^^

삐그덕거리는 나무복도와 옛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나선형 계단을 지나 숙소로 들어서자 파리에 온 것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나더라. 현관문 정면에는 겨우 샤워만 가능할 것 같은 작은 욕실과 화장실, 오른쪽에는 부엌과 거실이, 왼쪽에는 침대와 옷장이 놓인 작은 방이 있었어. 마치 파리의 방으로 이사를 온 것 같은 기분!

우린 한나이모와 첫 파리 식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짐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섰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잠기는 옛스러운 구리빛 열쇠와 현관앞 창문에서 빼꼼히 보이는 에펠탑이 마음을 포근하게 하더라. 낯설지만 오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두근거림. 엄마도 나와 같았을까? ^^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프랑스FR

École Militaire

프랑스FR

Le Champ de Mars

프랑스FR

Parisclass

프랑스FR

파리의 음식점은 애써 친절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그저 있는 그대로 당신은 손님, 난 점원일 뿐 ^^ 한국식 친절에 익숙해져 있다면 파리에서는 '내가 점원에게 뭘 잘못했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

한나이모가 꼭 함께 오고 싶었다던 카페는 전형적인 파리 주택가 길가의 카페 느낌이야. 한국의 유명 가수들도 자주 온다던데 카페에 앉아 바삐 출근하는 파리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니 나도 마치 그 여유로움 속에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야.

브런치는 훌륭했고 한나이모의 환영은 너무 즐거웠어. 엄마와 아빤 우리의 여행계획과 한나이모와 함께 할 것들을 이야기나눴어. 한나이모도 파리에서의 일상 때문에 무척이나 바빴거든. 그래도 우리가 와서 너무나 즐거워 보였어.

Share to SNS
Link copied.
Paste it some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