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Nov 20 2017
고등학교 때 한나라는 친구가 있었다.

원래도 1단지 만화방을 1주일에 한번은 꼬박꼬박 찾아가면서 만화책을 즐겨 읽고 있었지만,
한나를 만나면서는 길을 두 번 건너야 하는 6단지 만화방까지 뚫으면서
두 개의 만화방들을 매일같이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게 되고(그 옆 빨간 양념 묻혀주던 튀김집도 꼭 들렀다.)
나의 만화 감상 세계도 한층 더 폭넓고 깊어졌다.(허벅지도 좀 더 굵어졌다.)
-한나의 말에 따르면 6단지 아주머니가 만화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추천도 잘 해주신다는 거였는데 정말 그러했다. 단골 고객을 위한 신간 큐레이팅에 아주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지신 아주머니셨음.

한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였는데
엄마한테 맞아가면서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는 스트레스를 덕질로 풀고 있었고
늘 어두운 표정으로 힘없이 ‘쿠쿠쿡’ 하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한나는 언제나 좀 낯설었지만
책과 신문에서 보던 오타쿠와 실제로 친해진 건 처음이라 정말 멋지고 신선했다.

그런 한나가 어느날 혼자 일본에 다녀왔다.
교토의 단풍이 너무 보고 싶다면서.

한나의 부모님은 그런 분들이었다.
매일 좁은 방안을 꽉 채운 그랜드피아노 앞에서 10시간의 연습을 채우도록 매질을 하시지만, 일본에 혼자 다녀온다는 고교생 딸의 청을 들어주는 분들.
시험 끝나고 이대 앞에 한번 다녀오는 자유를 누리는 데에도 16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참 허탈할 정도로 부러웠던 자유였다.

나는 한나에 관해서는 A부터 Z까지 죄다 신기한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그쯤 돼서는 그냥 놀라기도 포기했었던 것 같다.
다만 교토의 단풍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됐다.

교토의 단풍은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길래
한나의 부모님은 고교생 혼자 학교를 빼먹고 여행을 다녀와도 허락해 주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둘은 실제로 아무 인과가 없는 문제인데ㅋ 참으로 고딩다운 상상.

근데 한나가 여행 후 나에게 선물로 준 교토 엽서는
참말로 정말로 그렇게나 아름다웠다.

빨갛고 검은 색의 대비와
아웃포커싱과 여백의 미로 채워진 교토의 그 엽서를
나는 서른살이 넘어서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나에게 교토 단풍은.
이슬 맺힌 빨간 단풍잎과 고요한 검은 목단 건물.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앞에
한국 부모님의 체벌을 동반한 훈육과 보수적인 한국의 공교육 출결 제도마저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ㅎㅎ

이제 서른두살 백수가 되어 드디어 교토의 단풍을 만나러 간다.

그나저나 한나는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Ctrip으로 예약한 피치 항공을 선택했다!
씨ㅂ트립에 피치 못할 때만 타는 피치 항공이라던데.

사실 교토에 무사히 도착한 지금 생각해 보면 항공사나 예약 대행사가 한 거대 실수는 없었다.

왕복 15만원에 끊은 표가 쇼핑 생각해서 수화물 추가하니까 19만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척 싸고,
내가 겟한 표가 어떤 외국 여성분이 취소한 표여서 그 분의 신상 정보를 내가 전부 볼 수 있었지만 내 정보가 노출된 건 아니니까₍₍(꒪່౪̮꒪່)⁾⁾

인천국제공항

대한민국KR

간사이 국제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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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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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가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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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ori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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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터미널에 내리면 무료 셔틀을 타고 1터미널로 가야 내가 타려고 하는 교토 행 공항발 급행 열차를 탈 수 있다.

컵라면을 먹었는데도 엄청 배가 고파서
로손 편의점에 가서 샌드위치랑 커피를 하나 사고,
여행박사에서 미리 사 온 급행 열차 하루카의 패스를 개찰구에 넣고 열차 타러 간다.

호스텔 Shiori Ann은 정말 대충 알아본 곳인데
어차피 2박 3일이니까 깨끗하고 샤워실 많은 도미토리에서 저렴하게 잠만 잘 생각으로 위치만 보고 골랐다.

그런데 위치뿐 아니라 많은 점에 대만족!
교토역 중앙 출구로 나와 대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바로 찾을 수 있고 가와라마치 상점가 등과도 멀지 않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은 1분 이내로 도착 가능하다. 난 버스정류장이 그렇게 가깝다는 걸 모르고 첫날 엄청 헤맸지만 ㅋ

그리고 시설도 굉장히 깨끗하게 관리되고
침대가 매우매우 넓으며 침대 아래 캐리어 수납공간이 널찍해서 큰 캐리어도 잘 넣어두었다.

암튼 호스텔로 걸어가는 길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아 허기져.

고조(교토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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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라마치(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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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들 진심 교토 버스 쉬워..?

나는 어려워 미쳐벌이뮤ㅠ

왜케 어렵지???????

사실 나는 일본에 올 때마다 매번 혼자 돌아 다니는 게 너무 어렵다.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되고, 나는 한자도 일본어도 못하고,
자동차는 전부 좌측 통행이고 ( o༎ຶ▿༎ຶo )끄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어려운 곳.

오늘 하루 동안 버스 잘못 탄 것만도 세 번이고,
맨 처음 은각사로 갈 때는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그냥 포기하고 가와라마치까지 걸어갔다.

그렇다고 길 가는 행인에게 물어보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님. 나도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보고, 그런 사람이 일단 나타나기만 하면 굉장히 성심성의껏 도와주는데 그들도 늘 나랑 같이 헤맨다.........

아무튼 오늘 호스텔에서 은각사 가는 길은
구글맵에서 제시한대로 버스를 타지 못하고(정류장을 못 찾아서)
그냥 가와라마치 역까지 20분 걸어가서 거기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 길이 매우 재밌고 즐거웠음. 작고 예쁜 상점이 많아 깜짝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교토 방문 전엔
‘후쿠야당 딸들’을 읽자

*사진은 전부 필카 앱으로 후보정했음. 커피의 나라에 왔답시고 한 잔 마셨더니 잠이 안 와서 할 일이 없었다ㅋ


가와라마치를 향하는 골목길은 만화 ‘후쿠야당 딸들’을 연상하게 했다.
작화력이 극악이고 내용 개연성도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인 그 만화를 자꾸 자꾸 보게 되던 건 (어제 또 결제해서 봄...) 딸들의 사랑 이야기가 *화과자처럼 달콤하고 차의 끝맛처럼 쌉싸레해서*는 전혀 아니고

단순히 교토를 배경으로 할뿐만 아니라 진한 교토색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교토 사람들의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되는, 우회적 거절인 경우가 많다든지
교토의 전통 있는 상점에서 입구에 걸어 놓은 휘장-‘노렌’의 상징과 그 의미라든지
만화 후반부에 나오는 마이코의 이야기라든지..
교토가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내용이고 작가가 교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만든 게 느껴지는 작품이라서
그 점이 멋진 만화이다.

아무튼 호스텔이 있는 고조 역에서 가와라마치에 가까워질수록 후쿠야당에서 말하는 오래된 노렌을 드리운 가게들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거 아님 말그.. ㅋㅋ
내 눈엔
나 요거 하나만 들이파고 이쒀!!!!!!!!!!!!!! 우리 몇백년 돼쒀!!!!!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귱.

가와라마치 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과격하게 사용한 발 다리가 적당히 하라고
내적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ㅋ

그리고 또 구글맵에 의존해서 버스 정류장을 찾았지만..
왜 정류장 나오지 않아?
나만 어렵냐규 ㅠㅠ
걍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빨라...

어쨌든 무사히(?) 버스를 타고
*다음날 알고 보니 진짜 호스텔에서 1분 거리에서 은각사 가는 버스, 가와라마치 가는 버스 전부 탈 수 있었는데 구글맵은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무서운 어플.*
은각사로 향했다.

긴카쿠지 (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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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가쿠노미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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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칸도 젠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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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훅 하고 들여마셔는 충격적인 비주얼을 뒤로 하고 바쁘게
은각사를 떠나 철학자의 길로.

에이칸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 7분쯤 되어버렸다.
정보를 대충 훑은 죄, 여기저기서 한눈 판 죄를 한순간에 받았달까? 분명 에이칸도 입장 시간 5시까지라고 알고 은각사도 철학자의 길도 수박 겉핥기로 후루루룩 보고 내려 온 건데 딱 4시까지만 입장을 받아주나부더라...???

서럽 ㅠ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라이트업 관람까지 1시간 반을 대기하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리러럴리 아픔이었다.
족저근막염과 관절염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것으로 의심될 정도로 아팠던 무릎ㅋ이,
이건 아냐 빨리 집에 가자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버려
끼여요오오오오오오옷(;´༎ຶД༎ຶ`)이라고 외쳤음.

네이버에서 산 후쿠야당 딸들을 보며 정신력으로 한시간 반을 버텼다.

교토의 추위 매서워

11월 말인 현재 낮 최고 기온이 10도쯤 되는데

지지난주까지 중동에 있다가 온 내가 계절감각이 없었던 건지
아님 교토가 원래 추운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정말 춥다.

난 여름의 일본이 미칠 듯이 더웠던 것만 생각하고
간절기 차림으로 왔는데...
그 상태로 해도 지고 찬 바람 맞으며 한시간 반을 서 있자니 점점 손이 곱아서 핸드폰 사용이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등이 아프고 발과 다리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드디어 열렸다.
(결국 에이칸도에서 가와라마치 상점가로 돌아가서 싼 목도리 급하게 하나 샀음. 아이 따뜻해.)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지 못할
은각사와 에이칸도ㅎ

에이칸도 젠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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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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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ori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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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웠다...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버스를 또 잘못 탔다..............

그냥 내가 멍청한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구글맵도 멍청한 건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묻고 다니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암튼 몸보신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3대 장어 식당이라는 곳 중 하나인
가와라마치의 ‘카네요’에 장어덮밥을 먹으러 갔다.

장어덮밥 위에 계란을 덮어 주는 메뉴(이름 그새 까먹..)에 M 사이즈로 선택.(장어 양 따라 SML 선택 가능)

정작 장어의 맛은 음 그냥 그랬는데
계란이 참 괜찮았다.
두껍고 짜지 않고 살짝만 달달하고 폭신한 계란말이였다.

대단한 나는 그래도 드럭스토어+과자 쇼핑은 했다.

그리고 집에 갈 때 한번 더 버스를 잘못 탔다 아하하핳
정말 강력한 택시의 유혹을 느꼈지만
내가 숙대 앞 여행박사 본사까지 사 온 교토버스패스 하루치가 5천원인데 택시비도 5천원이라는 걸 떠올리며 참아써 ㅠㅠ


너덜너덜해져서 호스텔로 돌아감.


** 빨리 첫째날 여행기 끝내고 싶어서 대충 사진만 올려쯤. 내일 다시 써야지~

DAY 2

Nov 21 2017
‘교토의 단풍을 음미하며
호젓하게 거닐기’

라는 건 아예 불가능한 것 같다.

교토에서 호젓하게 조용히 거니는 건 가능할 지 모르겠다.
교토의 단풍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인 것은 사실이다.
그치만 저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기기에는
단풍철 교토는 관광객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

에이칸도의 그 아름다운 붉은 빛도
미어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고
나도 그냥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은 지점에서 찰칵대고 빨리 지나쳐버리게 되었다.

둘째날은 오하라 라는 교토 근교의 작은 도시로 가서
번잡한 인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로 했다.

고조(교토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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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ara Bus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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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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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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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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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인 고조 역에서 곧장 17번 버스를 타면 종점인 오하라까지 한시간 반 걸려 도착한다고 안내받았다.

지하철역에 내려가서 ‘교토 관광 1일 패스’라는 교통권을 구입하는 김에,
어제의 버스 사고(교통사고 말고 계속 잘못 타는 사고ㅋ)를 예방코자 어느 쪽에서 타야 하는지 정확한 방향을 체크했다.

오하라로 가는 버스를 고조 역에서 타라고 해서 그러긴 했지만 타자마자 욜라 후회했다.
교토 역까지 가서 거기서 타서 출발해야 앉아서 가는 거였는데.......

이미 교토 역에서 모든 좌석이 꽉 들어차서 온 버스는
그 승객들 대부분이 오하라에 단풍 보러 가는 사람들인지라 절대로 빈 자리가 나지 않았다.

단풍철에 교토에 가서 어디로 장거리 이동을 하고자 하는데
교토역이 과히 멀지 않다면 웬만하면 한번 더 움직이더라도 교토역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게 현명한 것 같다.
특히 족저근막염 환자라면 ... 🐾

곧 보게 된 산젠인과 호센인 자체도 예뻤지만
‘잘 다듬어서 예쁘게 관리한’ 산길의 단풍이라는 신선한 풍경을 볼 수 있단 점에서
정류장에서 절까지 올라가는 10분 남짓한 산책도 굉장히 좋았다.

산속의 작은 절에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공들여 빚어두고 즐겼다니 일본의 불가 수행은 알 수 없다.
덕분에 나는 잘 보고 왔지만 ㅋ

산젠인의 정원엔 아주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 온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이 정원의 주인은
초록초록 이끼다.
가까이에 다가가 보면 갖은 종류의 이끼들이 촘촘하게 자라나서 마치 잔무늬의 초록색 융단같다.

사람을 피해서 온 곳이라고 했지만
역시 오하라에도 사람이 많았다.
어느 정도냐면 예쁜 사진이 나올만한 포토스팟에서 사람에 치어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 ㅋㅋ
그치만 확실히 교토 시내는 아닌만큼 사람에 떠밀리는 게 아니라 숨은 쉬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산젠인 관람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타베로그와 네이버 블로그에서 얼핏 보고 정한 오늘의 점심은
산젠인 바로 앞에 있는 세료 라는 집이다.
간사이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벤또가 있다고 해서 가 보기로.

왼쪽 하단데 있는 건 찰밥이고,
나머지는 계절에 맞는 나물들과 야채 그리고 작은 생선, 유부 등등에 아주 찰지고 맛있는 두부 두 조각 구성이었다.

계란으로 표현한 은행잎과 단호박 단풍잎이 깃들어 있고
버섯과 고사리로 푸른 숲을 은은하게 깔아 준 가운데
유명하다는 고베의 야채로 절여 만든 반찬들이 가지런히 들어차 있는 맛.

눈이 몹시 즐거웠다.
그치만 입까지 즐거워하기엔 나의 입맛 아기 입맛...
그래도 교토에서 가이세키 요리 이런 거까지 먹기엔 주머니가 부담되는 여행자들이 일본 느낌 담뿍 젖어서 먹기에 좋은 식사였다고 봄.

밥을 먹고 이제 호센인으로!
호센인은 산젠인의 주지스님들이 묵었던 숙소라고 하는데
액자 정원이 유명한 곳이다.

호센인은 약간 더 깊은 곳에 있어서인지,
아님 내가 점심을 먼저 먹고 12시반쯤 도착해서인지
사람이 훨씬 적고 비교적 조용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이곳까지 들어오는 게 프로그램이긴 하더라.)

그래서인지도 모르지만, 산젠인의 커다란 이끼정원보다는 훨씬 작고 아담한 곳인데도
호센인의 붉은색으로 가득 찬 정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호센인에서는 입장료가 800엔인 대신 차 티켓을 줘서
요기 앞에 앉아 한동안 차와 과자를 즐겼다.
이렇게 산다면 나도 스님할래.

약 3시간쯤 걸리는 오하라 방문을 마치고 교토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앉아서 가려고ㅋ
꽉 찬 버스를 내 앞에서 한 대 보내고 새 차를 타고 갔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하라의 풍경을 감상하며 돌아가고 싶었는데 개꿀잠.

Ohara Bus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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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마치상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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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ney Store Kyoto Kawaram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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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kerchief Bak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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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교토로 돌아오니
차가 워낙 많이 밀려서 2시간은 걸렸다.
어느덧 해가 지고... 금방 배가 고파진 나.

LUSH 가와라마치점에 가는 길에 데마라치 상점가를 지나는데 이렇게 귀여운 가게가 눈에 확 들어와서 들어갔다.

LUSH에서 거대 지름신을 잘 막고 계획한 것만 딱 사서 나와서 기분이 몹시 좋았는데
그렇게 세이브한 돈은 아마 디즈니스토어에서 쓰려고 그랬던 건가봐...(✰◕ั◡◕ั)

다음 여행 전엔 꼭
이마에 문신하고 갈 거야. “디즈니스토어 출입금지”

안 그러면 가산을 탕진하게 되니까..ʕ•́؈•̀₎
작년 뉴욕에서도 탐스퀘어 점에 두 번 가서 ***달러를 쓰고 왔는데, 그때의 교훈을 금방 까먹었다.
교토 점은 작아보여서 별로 살 것도 없겠네~ 요러고 들어간 내 잘못도 크다.

심지어 이번엔 진짜 호되게 잘못 걸린 게
백설공주 탄생 80주년 스페셜 에디션이 인간적으로 진짜 너무 많은데 하나같이 다 예뻐.

사실 백설이 좋아하는 거 어디 가서 말도 함부로 못하는데..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고 남성의 키스를 받아야 잠에서 깨어나고 집안일도 숲속 동물과 산새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늘 웃는 얼굴로 노래만 부르는 뒤틀린 여성상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너 좋아하는 거 부끄럽지만 나 너가 졸라 좋아.

넌 왜케 볼도 글케 빨갛고 머리는 새까맣고 파란색 빨간색 그 원피스도 진짜 귀여웡 백설앙 힝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ʕノノノ؈ㅎʔ

Gion Shirak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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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n Tok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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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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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DO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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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야마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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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ryu Ramen Kyoto ”Ramen noodle pork bones soup with light 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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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 moon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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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지고 바람이 차서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시간,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다고 생각할 때
이곳이 우동의 나라라는 것이 떠올랐다.
우동을 즐겨 찾진 않지만 ‘찬 바람에 뜨끈한 우동 국물’이라는 건 생각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지는 표현이니까.

타베로그를 검색해 보고 우동집으로 향하는데
마침 기온 시라카와를 지나는 길이어서
밤늦게 불 켜진 시라카와의 거리를 구경했다.

서점에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제목을 처음 보고
‘작작 좀 해!!!!!!!!!!!’라는 기분이었는데
이 책을 내가 읽게 될 줄은ㅋ.ㅋ.ㅋ.

그치만 교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후쿠야당 딸들> 말고도 읽어보고 싶어서 비행기 타기 전 e북으로 읽기 시작했다.
만약 여행을 앞두고 소설 속 지명을 하나하나 구글맵으로 확인하면서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화가 났을 것 같은,
진짜 오그릐토그릐한 감성의 소설이었지만
작품 속의 지역들은 실제로 가보고 싶었다.

Hello Dolly의 바텐더는 소설에 나온 바가 실제로 있는 곳이라며 이곳 Bar Moon Walk를 알려줬다.
소설과 달리 모든 칵테일과 주류가 단돈 이백엔!
이렇게 싼 술집이 또 있을까? 물가가 이집트 수준이다!
(근데 사실은 계산하면서 알았는데 기본 서비스 차지가 400엔+세금이다.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싸지만.)

길지만 아름다웠던 하루.

오전엔 오하라의 산속에서 붉은 단풍에 취하고
오후엔 쇼핑가에서 지름신에 취하고
저녁엔 밤깊은 본토쵸와 기야마치도리의 유흥가에서 위스키에 취한 밤.

DAY 3

Nov 22 2017

둘째날 오하라에서도 만만찮은 인파를 겪은 후
정말 조용한 산책을 즐기는 방법은
일찍 일어나기밖에 없단 걸 깨달았다.

그치만 전날도 잠은 엄청 설쳤다.
어디 여행 가면 꼭 객기 부리며 맛도 모르는 커피 한잔씩을 마셔서 잠이 안 와 고생을 사서 한다. 커피 안 마셔도 잠자리를 가려서 낯선 곳에선 어렵게 잠 드는데.
그래서 체험해 본 건데 숙면 안대는 효과가 별로 없다!
뜨끈한 온도 때문에 잠이 오나 했는데 더워서 은근 땀만 나지 뜨끈한 시간도 짧고....

암튼 우지에 가려고 세시간 자고 6시에 일어나서 체크아웃까지 완료!
교토 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고 가볍게 출발했다.

우지에서의 마을 산책

교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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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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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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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가미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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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리히논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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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늦으면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은 우지의 명물
뵤도인을 향해 우선 걷기 시작.

우지의 거리는 인상이 너무 좋았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아주 뚜렷한 특색이 있는 거리가 아니었지만
그냥 맑고 깨끗하고 차분한 거리를 걷는다는 게 그저 휴식같았다.

맨홀 뚜껑까지 귀여우면
열어보고 싶쟈낭(๑≧౪≦)

사람이 적으니 도로의 맨홀 뚜껑도 잘 들여다보였다. 디자인이 굉장히 다양하고 귀여우면서도
도시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첨엔 우지의 명물인가 했더니 일본의 맨홀이 원래 다 이렇단다.
그러고 보니 그런 기사를 예전에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나긴 하더라.
전국의 맨홀 뚜껑 종류가 6천개 이상이라고...

그래서 재밌는 뚜껑 나올 때마다 찍어 봄.

이러고 길 가면서 계속 사진 찍고 노느라
우지 방문 시간은 결과적으로 계획보다 두 시간 정도ㅋㅋ 더 늘어났다.

10엔 동전에도 실린 유적이라는 뵤도인.

시간 관계상 자세한 관람을 생략하고
곧바로 우지가미 신사로 향했다.

(스포)정원이 있는 녹차 가게
찾는 법 있음.

차의 고장 우지에서 녹차 디저트를 한번 먹고 싶어서
타베로그를 검색해서 알게 된
츠지리히논텐(Tsujiriheenonten)으로 향했다.

여기가 우지 역에서 가까운 건 사실인데
기찻길을 건너 주택가 한켠에 복잡하게 숨어 있어서
구글맵이 완전 엉뚱한 곳을 찍어 놓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갈 때 안 헤매려고
사진으로 찍어 옴ㅋ

교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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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하나미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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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OFF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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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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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국제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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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돌아와 기온 거리를 한번 더 가 보기로.
근데 그 전에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 스시집에나 들어갔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ㅎㅎ

빠른 걸음으로 북오프로 향했다.
여행 기념품으로 꼭 사는 그림책을 살 시간이 없었는데
시간이 얼추 될 거 같아서...!!!

북오프에서 딱 30분 있었는데
교토 버스 정체 정말 미친다ㅠ

하루카 4시 차를 타려고 역에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서 겨우 헐떡거리며 탑승했다.

겨우 공항에 제 시간에 딱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고 수화물을 부치고 나서는
폰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 주저 앉아서 충전을 시작했다....

샌드위치도 찹찹 우유도 호로록 하고 나니까
음 뭔가 이상하게 빠진 느낌이 들어서
게이트도 한번 확인하러 다녀오구
담배도 피우구...

그래도 이상하게 뭔가 시간이 많이 남는 느낌..?????
왜 사람들이 이렇게 안 보이지? 하면서도
계속 앉아 있었다.
여행 중 도합 12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이때 이미 두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에게 “근데 사람들이 안 보인다..”는 카톡을 보내려다가
문득 체크인한 다음에 시큐리티 체크랑 출국 수속을 해야 한다는 게 생각났(。☉౪ ⊙。)

ㅋㅋㅋㅋㅋㅋㅋ 게이트 마감 15분 전에...

미쳤다 미쳤다 속으로 오만번 외치면서 뛰어 들어갔더니
게이트 앞에 따뜻하고 점잖은 소파들 쫙 있고
충전 포트 각 두 개씩 붙어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행 중 잠은 푹 자는 게 좋겠다능...!!!!!!!!

DAY 5

Nov 24 2017

딱 요것만 산 척하면서 쇼핑리스트는 마무리 ㅎㅎㅎㅎ

에이칸도의 붉은 단풍.
호센인의 액자 정원.
본토쵸의 술 취한 밤.
우지에서의 조용한 산책.
후쿠야당 딸들 다시 읽기.

좋은 시간이었다.
언제 또 다시 단풍철에 올 수 있을까 싶어
긴 여행 뒤에도 끙차 하고 힘을 내서 온 짧은 여행.
곧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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