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May 16 2016
일출부터 일몰까지

신트라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늘이 아름답게 밝아온다.

파란 하늘아래 노란성벽이 너무 아름다워 계획했던 신트라. 이번 여행을 위해 생활한복을 샀는데, 오늘은 좀 추워도 입어야겠다.

신트라에 가는 버스+기차 1일권을 사려면 로시우역으로 가야한다. 그곳에서 약 40분을 타고가면 신트라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또 버스를 타고 조금 가면 페나성에 갈 수 있다.

신트라에 내리니 이게 웬걸 날이 너무 춥다. 하늘은 안개로 가득하다. 파란 하늘은 글렀구나. 비만 오지 않길.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굳이 내부를 보지 않는 것을 택하려 했는데, 내부를 들어가는 옵션이 큰 가격 차이가 없어 그것으로 선택했다.
실은 추운 날씨에 지치면 피신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친구의 말에 설득당했다.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둘러보고 카페 테라스로 나와 샐러드와 생선파이로 점심을 때운다.

지도를 보니 공원이 생각보다 넓고 볼거리도 많아보인다. 카멜리아 정원, 온실, 농장 등등 가고 싶은 곳을 찍어놓고 천천히 걷는데, 이 공원 생각보다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빽빽히 심어져있는 나무는 하나도 똑같은 모양새가 없다. 뿌연 안개 때문에 멀리 보면 볼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모습이 뭔가 신비롭다. 아마존 밀림의 아침이 이런 모습일까. 정글처럼 뒤얽혀있는 덩쿨과 가지들이 그런 상상을 만들어낸다.
조금 걷다보니 신전같이 생긴 건물이 보인다. 이쪽으론 사람들이 많이 안 오는지 인적이 없다. 안개 낀 울창한 숲 속, 낡은 건물과 그 앞을 장식하는 뒤틀린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한창 풍경에 취해있다가, 사람들이 오면 다른 곳으로 갔다.

카멜리아 정원과 농장들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파란 하늘도 멋지겠지만, 어느새 안개낀 날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길을 잃을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시간 감각을 잃고 그곳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호카곶. 그냥 '바다'라는 얘기만 듣고 따뜻한 해변에서 발담그고 놀 수 있을까 라는 낭만적인 상상을 했는데 오산이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 굽이치는 파도와 태풍에 가까운 바람. 친구가 6월에 갔는데도 패딩이 필요할 것 같은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다.
다양한 종류의 꽃으로 가득한 들판과 오르내리는 언덕, 그 아래 터키색 바다는 사진으로 보면 낭만적이지만 실상은 바람과 싸우고 있다. 사진을 찍는데 폰이 날아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하게했다.
우리는 풍경이 아름다우니 사진은 남겨야겠기에 미친척하고 겉옷을 벗자! 하며 한명씩 사진을 찍었다. 1분은 지났을까, 도저히 못 참겠어서 다시 겉옷을 입었다.

머리는 바닷바람에 떡지고 바람에 진저리가 날 때쯤,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힘듦을 두 배로 만드는 건 신트라에서 돌아가는 기차에 자리가 없다는 것.
리스본으로 돌아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Shellfish Rice로 속을 달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DAY 8

May 17 2016
도시의 아름다움은 노을 속에

전날 고생한 후유증인지 오늘은 꽤(?) 늦잠을 잤다. 여전히 온몸이 쑤시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오늘은 그동안 보기만 했던 트램을 타는 날. 딱히 목적지는 없지만 그냥 덜컹대는 트램 안에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28번 트램은 대부분의 관광지를 거치기 때문에 탑승객의 반이상이 관광객이라고 한다. 그래서 트램 안에는 '소매치기 조심', '마지막 정류장에서는 반드시 내려주세요' 등의 관광객들을 타겟으로 한 경고문들이 적혀있다.
나처럼 그냥 생각없이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아침에 게으름을 피워서 그런지 트램 안에 사람이 굉장히 많다. 생각했던 낭만적인 트램 여행이 아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 타야겠다.

또 하나의 유명인사, 비카선 트램을 보기 위해 내렸다. 역시나 이 곳에도 사람이 많다. 서로 트램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새벽같이 나와서 아침일출을 보고, 해가 뜨거운 낮에는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청하고, 다시 해가 질 때쯤 나와 구경을 한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비수기라고 생각했던 5월에, 유명 관광 도시 중 하나인 리스본에서 그 이유를 절실히 느낀다. 성수기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비카선은 언덕 위 아래 짧은 구간만을 연결하는 트램이다. 경사로를 달려서 그런지 생김새도 약간 기울어 있다. 우리는 트램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집에서 좀 쉬다가 다시 상 조르제 성을 보러 나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에서 보는 일몰을 보기 위해 나간다.
일출도 좋지만 여행을 가면 도시의 일몰은 꼭 봐야 한다. 하루동안 도시를 밝히고 사라지는 해가 남기는 흔적을 바라보면 하루를 잘 마무리한 기분이 든다. 또한 일몰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다채로운 모습이 보여지는 시간이다. 1분에 한번씩 도시의 색이 바뀌는 그 순간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담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들었던 유럽의 낮은 정말 길다. 지금이 일곱시라고 하는 내 핸드폰을 의심할 정도로 밝다.
해는 떨어질 기세가 안 보이게 높이 떠있다. 에그타르트와 샹그리아를 손에 들고선 리스본 최고의 전망 포인트를 이제야 발견한 것을 후회한다.

성을 한바퀴 둘러보며 해가 떨어지길 기다린다. 전망대에 앉아서 기다리기엔 바람이 너무 거세다.
호카곶 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맞먹는 것 같다. 아무리 바다 근처라고 해도 여행 내내 이렇게 세차게 불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삼면이 바다이지만 바람이 세진 않은데, 포르투갈=바람의 나라로 기억될 정도로 바람이 분다.

성곽 위에 올라가니 바람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 아래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맞설 수 밖에 없었다. 해가 점점 내려가면서 생기는 대비가 도시의 건물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붉은 빛의 사람들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보인다.

해가 지상에 닿으려는 순간에는 가장 바람이 센 포인트에 앉았다. 원망하기만 했던 바람과, 멋진 일몰이 있는 그 순간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해가 구름뒤로 사라지고, 구름의 금색 외곽선도 사라졌을 때, 우리는 일어났다.
배고픔과 추위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DAY 9

May 18 2016
마지막이니까 그냥 걷자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는 내일이 마지막이지만, 새벽같이 비행기를 타야하니 제외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우리를 침대로 짓누르지만, 떨치고 일어난다. 관광객이 붐비는 트램을 또 타긴 싫다.

아침의 빛은 또 다르다. 눈높이에서 강하게 빛나는 해를 잠깐 바라봐도 눈에 잔상이 남아 괴롭다. 하지만 그 해가 비추는 도시의 색은 아름답다.

또다시 28번 트램에 오른다. 역시나 자리가 넉넉하다. 이번엔 현지인이 많다.
맨 앞자리에 앉아 트램 운전사를 구경했다. 낡은 운전대를 돌리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의 손짓을 따라 트램이 삐걱대며 달리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박물관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열차가 실제로 운행되고 있으니.

어제의 그 비키선 트램이 있는 곳에 내려 다시 트램 사진을 찍고, 어제 봐두었던 100년 넘은 카페인 A Brazileira에서 아침을 시켰다.
자신있게 이것저것 골라 주문했더니, 레스토랑 오픈 전이라 빵 종류밖에 안된다고 한다. 일찍 나온 여행의 안 좋은 점이 여기에 있었다. 할 수 없이 맛있어 보이는 빵을 몇 개 골랐다.

만족스러운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못 가본 골목들만 골라 그냥 걷기로.
술집들이 모여있다는 바이루알투 지구로 향한다. 리스본의 밤은 11시 이후에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잠자느라 바빠 화려한 밤문화를 즐기지 못했는데, 여유가 있다면 하루 날 잡고 밤새 와인을 즐겨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바이루알투의 낮은 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고요하다. 알록달록한 집과 아름다운 타일들, 꽃이 예쁘게 핀 베란다는 본모습을 숨기는 소녀마냥 수줍다.

그냥 계속 걷다가, 앉아서 쉬다가 또 걷다가 지도를 보고 뭔가 있어보이는 곳을 골라 그곳을 향해 걷고, 그러다 보니 정말 멀리까지 와버렸다.
지도를 봐도 어딘지 모르겠는 이 곳 근처에, 큰 공원이 있다고 한다.

엄청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테주강이 보인다. 뜨거운 햇볕을 등지고 친구가 의자에 눕는다. 피로는 온통 쌓였는데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잠이 쏟아진다.

숙소에 돌아가 달콤한 낮잠을 청하고 나왔다.
오늘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파두 공연을 꼭 보기로 결심하고는 다시 알파마를 어슬렁거린다.
골목골목을 다니다보면 간판에 'Fado'라고 씌여진 식당들이 눈에 띈다. 파두는 포르투갈 전통 민요라고 하는데, 시간을 잘 맞춰서 가면 저녁을 먹으며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숙소 바로 근처에 'Sr.Fado' 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사전에 알아본 바가 없었으니 이번주까지 예약이 꽉 차있다는 답변에 할 말이 없었다.
검색해보니 한 웹사이트에선 파두 공연을 보기에 좋은 장소 Top5 안에 드는 유명한 곳이다. 식당 전용 홈페이지도 있고, 이메일로도 예약을 받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우린 내일 떠나야하는 입장. 리스본에 또 올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겠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다니다가 파두 공연을 보라며 호객을 하는 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 애피타이저 하나와(사실 돈이 많이 남지 않았다.) 샹그리아 한 잔씩을 시켰다.
여행 중 대구요리가 너무나 맛있었기에 '감자튀김과 계란후라이를 곁들인 대구요리'를 시켰는데, 그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빵이 없으니 짜긴하지만 파두와 함께 안주삼아 먹기에 적합했다.

파두 공연은 기대 이상이다. 식당에서 부르는 우리나라 아리랑같은 노래라고 하기에 그냥 동네 아주머니의 노래겠거니 했는데, 실제 음반도 파는 가수들이다. 세 명의 파디스타가 돌아가며 두세곡씩 부르는데, 울림이 식당을 가득 채운다. 한편으론 가사의 뜻을 알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저문다.

안녕, 포르투갈
Obri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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