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이슬란드에 갈 무렵 즈음해서 인디밴드 캐스커Casker의 이준오 씨가 여행에세이를 온라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후에 <내 인생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 라는 에세이집으로 발간되었으나 당시에는 "아이슬란드에는 외로움이 있다"라는 제목의 여행기였다. 아이슬란드에서 이 글을 읽었던 나는 이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문장을 조금 고쳐 다시 한 반 소리 내어 발음해보았다. 아이슬란드에는 외로움이 있지만 분명 그 어떤 따뜻함이 있었노라고.

지난 어느 밤 친구들과 아이슬란드에 가자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꿈을 꿨다. “또 가도 좋아!” 하면서 신나게 계획을 짜고 훌쩍 날아가 새파란 하늘과 맑은 날씨를 즐기며 드라이브를 하고, “밤에는 오로라를 보겠다”며 들뜬 기분마저 생생한 꿈이었다. 실제 아이슬란드의 계절과 날씨를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꿈이었지만서도 그만큼 내게 아이슬란드는 감정적으로 맑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나라다.

“아, 미뤄뒀던 여행기를 써야겠다”

벌써 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작년 초여름의 아이슬란드는 아직도 내 속에 어느 정도의 생생한 감각을 지닌 채 남아있다. 홀로 유럽여행길에 올랐던 나는 미리 신청해둔 국제워크캠프기구의 봉사활동을 겸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꼬박 2주를 지냈다. 외롭고 쓸쓸하기만할 줄 알았던 나홀로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북적이고 즐거웠으며, 왠지 이름부터 가장 추운 나라일 것만 같던 아이슬란드는 내 마음 한켠에 가장 따뜻하게 자리잡았다.

그 2주라는 짧았던 시간은 내 인생의 어쩌면 가장 붕 떠있었던 시간. 그 때의 내가 ‘진정한 나’ 같은 거창한 진실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쓸쓸한 순간도 있었고, 화가 나는 순간도 있었고, 또 여러가지 사정도 있었겠지만 선명한 사실 하나는, 나는 그때 아주 분명하게 행복했다.

"나는 지금 이 곳에, 이 사람들과 함께,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에 대해 나는 매일같이 얘기했다. 이상할 정도로 즐겁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좋았고, 그건 정말 기쁜 감각이었다.

London Luton Airport

United KingdomGB

KEF

IcelandIS

Wandering Around Reykjavik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어떻게 발음해야할지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던 도시. 레이캬비크Reykjavik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이자 가장 크고 인구수가 많은 도시이다.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해봐야 십만여명이지만.

이른 새벽 런던을 출발해 도착한 레이캬비크는 그저 우중충하고 쌀쌀했다. '날씨가 궂다'는 인상만 받은 순간도 잠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 어디에서도 저 멀리 희게 눈 덮인 산이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눈이 올 정도로 찬 날씨는 아님에도 누가 하늘에서 빙수를 갈아 뿌리는 것처럼 눈 같은 비 혹은 비 같은 눈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무척 새롭다. 창밖을 하염없이 보며, 혼자 헤쳐나가야할 아이슬란드의 2주를 상상해보았다.

정 반대 방향으로 당당하고 힘차게 걷다가 제 방향을 깨닫고 뒤돌아 걷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서, 숙소를 찾아가는 언덕과 보도블럭에 괜스레 혼자 상처받는다. 이쯤 했으니 어디 한 번 좀 울어볼까- 싶은 순간 거짓말처럼 숙소에 도착했다.

레이캬비크Reykjavik는 사실 Reykja (Smoky) +Vik (Bay) 두 단어를 합쳐 지어진 지명으로, 연기 자욱한 항만, 안개낀 마을 정도의 의미가 된다. 사실상 도시라기보다 어떤 한 지역, 구역을 지칭하는 거라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설명해주었다.

광활한 자연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맑고 높은 하늘만 떠올렸던 나의 이미지와 달리 내가 본 레이캬비크는 주로 뿌옇고 스산했다.

"If you don't like the weather in Iceland now, just wait a few minutes."

종종 비가 흩뿌리고 안개가 자욱한 아이슬란드의 암담한 날씨를 지켜보며 우리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언제 갑자기 날씨가 변할지 모른다. 공기의 톤과 하늘이 시시각각 그 무게와 모양을 달리한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언제든지 나가 걸었다. 어떤 날은 숨어있는 해변을 찾아 오솔길을 걷고, 어떤 날은 자그마한 등대를 보러 가기 위해 바다를 끼고 30분도 넘게 걷기도 했다. 먼길을 걸어 별거 하지 않고 또 먼길을 걸어 돌아오는 일이 익숙해진다.

레이캬비크는 그 자체로 무척이나 '힙'한 도시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도 찾아볼 수 없다. (도미노 피자는 있지만.) 구태여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거리 구석구석 건물마다 온통 스트리트 아트. 빈 벽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피티뿐만 아니라 건물이나 거리 자체도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가장 잊지 못할 것 같은 레이캬비크의 모습은 백야의 석양. 찬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해가 저무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말을 잃었다가, 해가 진 후에도 온전히 밤이 찾아오지 않은 밝은 공기 속에서 왜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90%가 엘프가 있다고 믿는지 (혹은 믿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The moment when you realize you're gonna miss it so badly. I've already started missing Reykjavik, even though I haven't even left here yet.

We Are Reykjavik Arts Festival Girls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스티벌에 봉사활동으로 참여하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다만 상상했던 축제 같은 분위기는 없고, 시내 곳곳에 숨은 갤러리나 공연장들을 구태여 찾아가야 했다. (레이캬비크 아트 페스티벌은 약 4주간 진행돼고, 나는 후반 2주에 참여했으니 아마도 페스티벌 초반에는 이런저런 오프닝 행사와 야외 퍼포먼스 등으로 축제 분위기가 조금 더 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레이캬비크 아트 페스티벌은 매년 레이캬비크에서 열리는 축제로 벌써 29회를 맞이했고, 2015년에는 젠더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다양한 공연과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Hallgrimskirkja 교회에서 진행된 Engram (기억 심상)이라는 퍼포먼스.

제각기 나눠준 헤드폰을 끼고선 교회 안에 앉아 십여분 가량 명상하듯 헤드폰에서 흘러나온 귀를 가득 메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조금 나른해지기도 하는 명상의 시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안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당 안을 걷고, 문을 열고 나가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옆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교감하기도 하고. 계속 음성을 따라 성당 주변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600개의 남은 호흡이 500개가 되어가고 400개가 되어간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소멸의 순간을 떠올리며 공허한 마음이 된다. 그리고 죽음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음성을 들으며 되레 나는 살아있음을 강하게 실감한다. 동시에 무척이나 사라지고 싶었다. 이대로 그저 소멸해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상당히 강렬한 체험이었다. 잠시 말을 잃었다가, 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추위가 밀려오고, 옆에 있던 사람들과 서로 이런 저런 감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말하지 않는 혼자 갖는 감정들이 있고 그건 그것대로 소중하지만, 이렇게 느낀 기분을 조잘조잘 이야기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참 기쁘다.

We Are All Up for Iceland Tour!

혼자 여행을 시작했지만, 봉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이 멋진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혼자 보고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던 점. 이 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가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주말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골든써클투어를 다녀왔다. 너무 '관광'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광활한 아이슬란드 자연에 그 모든 걱정과 불만이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이곳저곳 내려주며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보여주는 골든써클 투어. 적당히 감흥 없을 법도 한데, 매 순간순간 이 모든 자연의 광활함과 거대함 앞에 선 흥분이 너무도 생생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직전 대표적인 로드트립 코스인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레이캬비크(서쪽)에서 남쪽 바다를 끼고 남동쪽에 위치한 요쿨살론까지 다녀왔다. 편도 5시간의 거리를 하루만에 왕복.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힘들었지만 요쿨살론 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길,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결론. 가는 길 곳곳마다 차를 세우고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싶은 지점들이 많다. 언젠가 다시 와서 차를 타고 정성스레 '여행' 하리라 다짐했다.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소중해지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내가 소중함을 느끼는 이 감정이 그런 게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느껴지는 아련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진짜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소중해하는 마음이라고. 이 곳, 이 시간, 이 기분, 우리가 나누는 대화와 우리가 공유하는 순간순간이 너무도 소중해서 슬퍼질 것 같은 기분을 눌러 참고 마음껏 행복해하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지금 아쉬울 것 없이 무척이나 듬뿍 행복하니까.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아도 개의치 않을만큼 나는 지금 충만하다."

요쿨살론에 가까워지는, 이별의 순간을 앞둔 아이슬란드 1번 고속도로 위에서 쓰는 마음.

떠나기 전부터 미리 그리워했던 그 곳, 그 시간, 그 마음을
나는 반드시 제대로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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