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몰라. 난 이 카페 주인이 아니야. 나는 시인이야. 이제 곧 있으면 내 시집을 출판할 거라고. 매일매일 시를 하나씩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고, 지금은 내 팬들도 꽤 많아졌다고.'

어려운 첫날 밤이었다. 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 모두 생소했던 그 첫 번째 날.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 또한 아직 어색한 그런 때였다. 전날 어렵게 구한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주소는 알고 보니 한 카페.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그 카페에, '여기 그냥 들어가서 캠핑하면 되나요' 라고 물어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카페 펜스 옆, 바닥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던 그에게 다가가, 이곳에서 묵으면 되는 것이냐고 묻고 만 것이다.

'난 1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과달라하라까지 걸어간 적이 있어. 그 이후로는, 기분이 아무리 안좋은 날에도 감사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거야.'

처음으로 길에서 넘어지고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외로웠던 날이었다. 그런데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만난 이 거리의 시인은 내일 산타모니카까지 날 데려다 주겠다 한다. 그만이 알고 있는 조용한 길로.

페이스북에 자신의 시를 올리고, 댓글이나 쪽지에 '고맙다'고 전하는 것이 바로 그에게 있어 일상의 큰 부분 중 하나. 그리고 자신이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을 주며 그는 살아간다 한다. Self-Publish는 그의 자그마한 꿈이라고.

미국이란 나라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500불이 없어 사고 싶은 기타를 살 때도 남의 도움을 받는 그이지만, 뭐 그 또란 도움을 주곤 하니까. 그렇게 나는 여행 중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베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 같다.

그의 살가움이, 그리고 80킬로 떨어진 곳까지 자전거로 날 바래다 주는 그의 여유가 그리울 때가 있다.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더니 어느새 하늘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날, 나를 받아주기로 했던 호스트가 연락이 두절되고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힘들게 하루를 보냈던 나는 힘이 탁 풀렸다. 이미 홀딱 젖었지만, 그리고 이곳의 비는 길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도 있었지만, 오늘은 더는 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내가 지나던 곳이 남 캘리포니아의 엄청 큰 농장이었던 것 같다. 비를 맞으면서 가도 가도 쉴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고, 어쩌다 나온 집의 집주인에게 용기를 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잠깐 쉬기로.

"조, 속도를 좀 줄여야 돼. 넌 여행을 하러 온 거지 기행을 하는 게 아니잖아." 나를 지켜보던 한 여행자가 한 말이다. 기어코, 너무 서두르다 탈이 나고 만 것은 아닐까?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돈이 없는걸.

비가 그치고, 비에 젖은 생쥐마냥 저기압인 상태로 길을 가던 때에, 한 노부부가 멀리서 나를 멈춰세웠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거냐고, 그리고 어디서 온 건지, 지금 괜찮은 건지 물어보던 부부는 내게 타코를 권했다.

할아버지 Ross는 자신도 고등학생 때 미국을 돌아다녔다고, 처음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안다고 하신다. 비가 오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또 잘 먹지 못하면 얼마나 이 생활이 힘이 드는지 같은 것들을.

그리고는 침대에서 자는 생활이 그립지는 않느냐고, 하루 정도 집에서 지내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 하신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인연이 하루 평안을 주는 것이 행복했다 한다. 한 노부부와.. 이미 16살을 먹어버린 한 노견과 함께.

여행의 원칙 중 하나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숙박비는 되도록 줄이자' 였다. 웬만한 상황이라면, 그러니까 수세식 화장실을 쓰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라도, 조금 다 싸다면 그곳에서 캠핑을 했다.

그 날 또한 22달러를 내고 묵어도 될 것을, 굳이 20km 더 가서 12달러만 내고 자기로 결정한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푸세식 변기 부스가 두어 군데 있을 뿐, 다른 어떤 인위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씻는 거야, 여기 강물에서 씻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마실 물을 어쩐다, 하며 옆 자리 캠핑카의 부부에게 갔단 것이다.

혹시 마실 물이 많으시면, 조금만 주실 수 있으세요?

결국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었고, 그들과 같이 식전 기도를 올린다.

"새로운 친구와 양식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우리의 먼 친구에게 아름다운 하루를 베풀어 주셔서... 그리고 이 친구의 여행길에 사랑이 함께하기를 바라옵고.."

나를 초대한 아저씨는 Trans-Canada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였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는 너무도 행복했다고, 그래서 지금 나와 함께하는 시간 또한 행복하다고.

식전 기도로 날 울먹울먹 하게끔 만든 이 마성의 남자는 2달러 동전을 꺼내면서 배풂의 정점을 찍었다. 이 동전이 네 거스름돈을 줄어 줄 거라고.

언제나 그렇듯 새롭게 와닿는 나눔의 경험, 그리고 쉽게 잊혀지는 고생했던 경험, 그리고 절대 잊혀지지 않는 따뜻했던 그 말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겠다 싶던 때였다.

이쯤 되면 다른 자전거 여행자에게 조언을 해줄 법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 무렵 한 남자가 캠프장에 도착했다. 오늘의 캠프 메이트.

'리처드'라는 남자는, 자신이 이 생활을 시작한지 만으로 이틀이 지났다고 했다. 예전에는 자동차로 다니던 것을, 시간이 조금 지나니 모터바이크로, 그리고 지금은 자전거로 가게 되었다고.

조금 이야기 해 보니 이 아저씨는, 실은 여행을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었단다.

자신은 남부 루이지야나에서 왔는데, 여긴 생각보다 날씨가 춥다고, 긴팔이랑 이런저런 챙기지 않은 물건들도 너무 많고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고.

별 준비 않고 이틀 전에 자전거를 사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그래서 좀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한 번도 입지 않은 긴팔이 있어 그걸 주면서, 아저씨, 한 번 며칠만 더 해 봐요. 2주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된다 하니, 조금만 더 참아 보라고, 하루에 2-30km 정도 조금씩 나아가면 어느 순간부터는 적응될 거라고.

그렇게 알겠다 하고 다음 날 떠나간 그는, 두달 가량 감감 무소식이다가 메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이젠 자신이 서부를 얼마나 그리워 해왔는지 알 것 같다고, 직장을 서부로 옮기고, 집도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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