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 눈에 반한 여행지였다

내 대학생활 대부분을 함께한 여행동아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처음 기획해서 여행을 갔고, 처음 단체 여행을 했으며, 첫눈에 반해 통영이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여행지가 그 곳이었다. 제주도를 발견하곤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은 제주도를 더 자주 갔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빛나던 여행지였다.

내 첫번째 통영은 20살 여름이었다. 내일로 티켓으로 경상도 여행을 하다 마산에서 버스를 타고 통영에 갔었다. 거제도를 거쳐가는 곳으로 아주 잠깐 스쳐가듯 통영항에 머물렀다.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가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통영은 좀 더 본격적이었다. 여행동아리 답사로 거제/통영이 결정되어 당시 여행 기획팀원이었던 나는 사전답사를 갔었다. 봄에, 내가 좋아하는 햇살과 바람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미항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 때 깨달았다. '바다, 산, 그리고 섬' 미륵산 정상에서 바다와 그 바다에 동동 떠있는 한려해상공원을 보았을 때 '이것이 미항이구나!' 알았다.

미항의 조건 - 바다, 산, 섬

미륵산 정상은 5년전 보단 좀 더 컨텐츠가 넘쳤다. 새로운 케릭터인듯, 케통이와 케순이(분명 케이블카를 저격한 것일테다)가 생겼고, 낭만의 여행지답게 '느린 우체국'도 생겼다. 그 전보다 전만대도 많아졌고, 전망대 마다 스토리도 더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그것조차 추억으로 남았다

이번에 통영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따뜻해지고 싶어서였다. 봄이 먼저온다는 남도에 가서 '따뜻함'을 하루 빨리 느끼고 싶었다. 서울엔 눈보라가 쏟아지고 칼바람에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에 봄바람이 절실 했다.

이 아름다운 통영에 눈물을 흘리며 온 적도 있다. 사전답사 이후, 160명의 인원과 함께 온 통영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눈물과 눈물 뿐이었다. 교통편이 최악이었고(서울-거제 10시간이 걸렸다) 차가 너무 많아 계획한 여행지엔 접근 조차 할 수 없었다(거제도와 통영이 거의 2차선 도로였기 때문이지). 첫날 밤부터 폭우가 쏟아져 유람선이 뜨지 않았고, 숙소엔 물이 나오지 않았다. 통영여행의 백미인 미륵산케이블카에서 볼 수 있는 건 뽀얗고 촉촉한 안개뿐이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은 자연이다. 어떻게 그 날씨를 감지하는지 귀신같이 꽃이 피고, 나물이 올라온다. 그리고 통영에선 도다리 쑥국이 나타났다. 봄에 가장 통통하다는 도다리 한마리와 제일 먼저 땅 위에 피는 쑥은 기가 막히게 봄향기를 내뿜는다.

서호시장에서 도다리쑥국을 먹고, 시장구경을 했다. 서호시장을 거쳐 중앙시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중앙시장과 연결되어있는 동피랑마을을 구경하고 내려와 이순신 공원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아직 바람이 쌀쌀했지만 그래도 봄이 느껴지니 기분이 좋았다.

멍게하우스에선 멍게를 팔지 않았는데, 그 모양이 웃겨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몇년만에 다시 찾은 중앙시장은, 미륵산 정상처럼- 색다른 풍경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몇 없었던 꿀빵집이 한 집 걸러 있었고 다양한 기호에 맞게 개발되어있는 빵들도 생겼다. 줄서서 먹는 카페가 생겼고 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활기찼다.

매우 힙한 피잣집과 통영불교의 오묘한 조화. 꺄르륵 소녀들과 동피랑 마을에 평생 사셨을 할머니의 조화. 묘하게 잘 어울려 좋았다. 동피랑 마을 입구엔 해산물 집밖에 없었는데, 재밌는 가게들이 많이 생겨 골목을 걷는 재미가 더해졌다.

동화마을 같은 동피랑

동피랑 마을도 힙해졌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벽화들과, 마을 어르신들과 공동 작업한 벽화, 드라마에 나온 벽화, 그리고 여전히 클래식한 인기를 얻고 있는 벽화들로 마을이 가득차 있었다.

내 관점에선, 통영은 도시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관광산업이 잘 발달된 것 같았다. 식당 사장님 말론 주말 인파가 어마하다는데, 통영의 인기가 날로 올라가는구나 싶었다.

그 전에 왔을 때 이순신 공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엄마아빠가 다녀오신 후 강력 추천했던 곳이라 버스 티켓을 좀 뒤로 미루고 이순신 공원으로 향했다. 중앙시장에선 2km 남짓되는 거리라 걸어가기로 했다. 구시가지를 지나, 항구와 정비소를 거치니 금방 공원에 도착했다.

비슷한 풍경이겠거니 하고 갔던 공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산, 바다, 양식장이 하나로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혼자 감탄하지 못해 평상에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20대 초반쯤의 귀여운 여자 둘이 온갖 감탄사를 내뿜어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찬사보다 더욱 높은 퀄리티로 풍경에 감탄하니 나도 그 풍경에 같이 빠지게 되더라.

해안가를 따라 걷는 산책로와 이어져, 다른 마을로 연결되는 긴 산책로도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더 걷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낮은 언덕에만 발을 딛고 왔다. 새소리와 바닷소리 그리고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굉장한 안정감을 자아냈다. 집에 오며 찍어논 영상을 들었는데,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소리'라고나 할까!

활짝은 아니지만 곳곳에 동백도 피어있었다. 통영 동백을 보니 봄이 곧 올 것 같다는 설렘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한번 바라보고, 다시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통영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었던 빼떼기죽집에 갈 계획이었다. 좋은 풍경으로 충만해져서 그런가, 중앙시장 가는 길은 오는 길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말린 고구마와 온갖 잡곡을 넣고 만든 빼떼기죽은 이 지역 특산물이라 했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후로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큰 무쇠 가마솥에 말린 고구마를 몇시간이고 끓여 물컹해지면 먹는 죽이라했는데, 감히 집에서 만들어볼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더욱 궁금했었다.

빼떼기죽에선 엄마맛이 느껴졌다

온화한 웃음으로 날 맞이해주셨던 빼떼기집 주인 이모는 정말 우리 이모, 혹은 엄마같았다. 구수한 고구마죽을 먹고 있으니, 진짜 여행온 것 같았다. 엄마 생각이 나서 포장을 했는데, 한 통은 결국 내가 먹을 것 같아 두 통이나 사고 말았다.

여행의 마무리는 뭐니뭐니해도 조용한 카페에서가 제일 좋다. 커피 한 잔, 혹은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하면 '아, 좋은 여행이었군'하게 된다. 통영항이 한눈에 보이는 2층 카페에 올랐다. 정말 이딸리아노처럼 멋지게 생기신 중년 바리스타 분이 따뜻한 커피를 내려주셨다.

안녕 통영! 이번에도 따뜻했어!
조만간 또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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