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그 곳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 있다.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지도에 안나오는 곳이 어디있어? 할 것 같지만, 정말로 그 이름을 검색하면 지리책에서나 보던 지형지도 한 가운데가 표시되는 가기도 힘든 곳,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모르겠다. 내가 갔을 때는 한겨울 비수기 때라 사람이 없었지만, 관광안내지도에 나온 봄여름 사진에는 사람이 꽤 있었으니.

처음에 어떻게 이 곳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냥 스쳐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곳의 사진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던 건 순백의 하얀 나무들이 빽빽히 서있는, 정말로 요정들이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일 것만 같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그런 인상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이 곳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언제, 어떻게 갈까 하는 고민만 반복하다 연말, 한겨울에 다가온 기회를 잡고 말았다.

동서울종합터미널

대한민국KR

인제시외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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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는 어렵지 않았다. 열심히 포털을 검색한 결과, 인제 터미널에서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 가는 버스가 11시 20분에 있다는 정보를 보고,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탔다.

점심을 먹지 못할 것을 예상해 김밥 한 줄을 샀고, 예상외로 터미널에 롯데리아가 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김밥으로 만족했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기사님에게 재차 확인을 한 후 버스를 탔다. 하지만 시골 버스의 특징은 정류장 안내멘트는 커녕 버스 정류장 표시도 없는 길 한가운데에 사람들을 내려준다는 것.
우리는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지도를 확인하며 여행자인 것을 티내고 있었는데, 결국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기사님께 내리는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길 한가운데에서 내려주긴 했지만 기사님께서 방향을 알려주셨고,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미리 파악해둔터라 어렵지 않게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힘든 등산 후에 얻은 자연의 선물

자작나무숲은 예상과 달리 입구에서 꽤 많이 걸어가야 했다. 사진에서 보던 자작나무숲을 만나려면 거의 한시간을 등산해야 하는데,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 터라 더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출발 전 아빠가 강추위라며 잔뜩 껴입고 가라고했던 충고가 원망스러울만큼 땀이 났다. 히트텍에 두꺼운 목도리를 칭칭 감고 털모자까지 썼으니, 움직이며 생기는 열이 발산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할 때가 올 때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새하얀 풍경은 여태까지 흘렸던 땀과 다리 통증을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너무 예쁘다" 라며 감탄하길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숲의 초입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그저 그 풍경에 취해있었다. 그날에 느꼈던 감정을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곳에 계속 머물러있고 싶었다.
숲의 분위기와 햇빛이 비치며 만들어내는 명암과 너무 추웠지만 나갈 수 없게하는 알 수 없는 끌림.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의 숲. 사실 차가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으니 비밀이라고 하기도 이상하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일박이일에 나왔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밀스러운 느낌을 느꼈던 이유는 하얀 나무가 뿜어내는 신비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안아 현실감을 느끼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곳들과 일생에 한 번 갈까말까한 멋진 곳에 가서 결혼사진을 남기는 것. 이곳은 아마 그 리스트에서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싶다.

한참을 풍경에 감탄해있다가 말없이 사진을 찍다가,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너무 추워져서 돌아가기로했다.

사실 돌아가는 길도 다사다난했다.
내린 곳에서 돌아가는 버스가 해질무렵에나 있다고 하길래, 한시간을 넘게 걸어가야 있는 버스정류장에 가보라고 하시는데, 또 마침 한시간 좀 후에 버스가 올 거라고 한다.
딱히 선택권이 없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한 차가 저만치 앞에서 멈춰선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뛰어갔더니 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단다.
그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었는데, 우리같은 대책없는 여행객이 종종 있나보다.

그 힘든 과정을 겪고도 이 곳을 또 가고싶은 이유는 가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가수가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듯이, 이 신비로운 숲도 영원히 나만 알고싶은 마음.
이번에 방문했을 때도 흰 자작나무에 새겨져 있던 이름들을 보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떤 장소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었다면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남긴 흔적은 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의 기억에 생채기로 남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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