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Sep 30 2015
2015년 여름 결국 휴학계를 냈다

바쁜 일상 속에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삶의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잊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였다.

마음을 굳혀 휴학계를 내고, 예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을 실행에 옮겨보기로 했다.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다른 도시에 한 달동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한 달을 살아볼 장소로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다, 자연과 인문 환경이 잘 어우러져있을 법한 곳으로.. 문득 제주가 떠올랐다! 다른 기억들도 아니고 단지 오래 전 제주의 한적한 도로에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 하며 보던 초원과 돌들이, 그렇게 나를 한 달간의 제주살이로 불러들였다.

한 달 내내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매일 지는 해를 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그 뒤로는 비교적 수월했다. ktx보다 싼 왕복 비행기 표를 구하고, 하루 만 원씩 2주를 묵을 수 있는 쉐어하우스를 구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5년 9월 30일, 태어나 처음으로 낯선 도시에서의 짧은 삶이 시작되었다.

숙소 사장님께서 장기간 머무르는 사람이 그 방에 나밖에 없을 거라 하셔서 외로울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지만, 다행인지 도착하는 날부터 그럴 틈이 없었다. 그 곳은 여행객들로 늘 북적였다. 게다가 인상 좋은 사장님 덕에 걱정 많던 내가 하루만에 제주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DAY 2

Oct 01 2015

제주에서의 둘째 날. 비가 와 입산이 통제된 사려니 숲을 뒤로하고 제주돌문화공원에 다녀왔다. 비가 오는 제주는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DAY 3

Oct 02 2015

제주에서의 셋째 날. 협재 해변과 금능 해변을 간 날이다.

제주를 갈 때 준비해간 가이드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다. 9월에 면허를 따려던 계획을 실패하기도 했고, 면허를 땄어도 렌트는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한 달이나 있는데 그 오래 걸린다는 버스를 타고 다녀보자, 하는 마음으로 버스 여행을 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서쪽으로 가는 702번 버스를 한 달동안 몇 번을 탔는지 셀 수가 없다. 이 날은 이 702번 버스를 처음 타게 된, 어떤 의미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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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주 버스가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서 약간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맑은 날의 제주의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다. 양 창 밖으로 보이는 초원과 돌담들은 새삼 제주에 오기로 결심한 날의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사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제주에 올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 걷다 보니 작고 소박한 가게들이 나왔다.

이곳은 내가 제주에서 처음 팔찌를 산 '서쪽가게'이다. 이후 협재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들르거나, 적어도 눈길 한번 쯤은 주는 곳이 되었다

가게에서 팔찌를 사고 점심 먹을 곳을 물었더니 근처 점빵이라는 곳을 소개해 주셨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혼자 있는 고요함도 마음에 들고. 그냥 저냥 좋았다.

제주의 북쪽에 머물다 보면, 하늘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으로 나왔을 때, 마침 맑은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고 있었다.

이 날은 폭풍이 지나간 후라 물이 그리 맑지는 않았지만! 10월이지만 10월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바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는 날이었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한동안 서성이다, 왠지 더 깊은 제주다움을 느끼고 싶어져 무작정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간간히 올레길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를 만나면 따라가기도 하면서.

(후에는 협재도 협재만의 제주스러움을 한가득 가졌음에 반해 협재를 자주 찾았었다. 이렇게 이쁜 바다가 심지어 조수간만의차가 있어 올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닌가. )

그렇게 걷고 걸어, 금능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 하게 된 발견은 아직도 제주에 가서 마주한 순간중 가장 감격스러운 저녁 중 하나로 꼽히는데..!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은 걷다 보니 이렇게 금능리가 나왔다. 관광지 느낌이 거의 나지 않고 사람 사는 곳 같아서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마을 속을 계속 걷고 걸었다.

계속 걸음을 옮기다 한국에서 난생 처음 보는 선인장 군락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제주에는 유명한 선인장 군락지들이 있고, 그 유명한 백년초가 선인장에서 나는 식품이었다고....

제주에 오면서 마음먹었던 것처럼 멋진 노을이 보고 싶어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드디어, 노을빛 하늘을 만나다

그 곳에서의 노을은 생각보다 더 황홀했다. 무엇보다 그 곳에 노을과 억새와 선인장, 그리고 오직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묘하게 나를 벅차게 했다. 기분 좋은 풀 냄새들이 코 끝을 맴돌았고 고요한 가운데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제주에 온 보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노을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간단한 식사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가했다.

내일은 제주의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될 지 가득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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