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Jun 22 2016

#1 한창 대학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던 2016년 초여름 즈음

친한 대학 동기들과 여름방학에 싱가포르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기대에 차있었고, 종강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우리 슬슬 뱅기티켓 예매해야겠다!” 라고 외치던 5월의 어느 날, 적당한 가격(물론 최저가ㅎ)의 왕복 항공편을 찾아 다 같이 한 번에 결제를 하자고 결정을 했다.
그 때, 가슴 속 무언가가 나에게 아직은 아니라고 소리쳤다.
마치 인터스텔라 속 S T A Y !!! 처럼.

“야, 나 좀 더 길게 있다 오고 싶은데 그냥 따로 예매할게 진짜 미안해 8ㅅ8”

이제 2학년이니 언젠가 군대도 가야하고... 커서 뭘 할진 모르겠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정리할 시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에 여행을 너무나 가고 싶었고, 4박 5일의 싱가포르 여행만으론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혼자 여행을 가자! 이건 기회다! 디스 이즈 찬스 와우 베이베!

그렇게 막연히, 내 스물한 살 여름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시작되었다.

스물한 살 여름.

#2 6월 21일 화요일 밤, 새마을호

확정되지 않은 루트, 예약하지 않은 숙소들, 아직 신청하지 않은 비자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떠나긴 떠나는데,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불확실성만 가득해보였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그리고 여행 정보를 찾느라 며칠 째 밤을 샜고, 서울에서 종강파티까지 있었다. 출국 전 날 남은 여유 시간은 6시간 남짓. 미얀마 여행 참고 책 구입에 머리도 잘라야했고, 셀카봉도 사야했으며, 종로 외가댁도 들려야했다. 게다가 그 모든 걸 마친 뒤에 다시 평택 집에 돌아가서 여행 준비를 마쳐야 했다. 동아리 회장선거와 이미지사진 찍기를 마치고, 짧은 종강 파티를 즐기다가 이른 시간에 화양리를 빠져나왔다.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평택으로 향하는 새마을호 기차 안에서, ‘The Road to Mandalay’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끼고 여의도의 밝게 빛나는 야경을 넌지시 바라본 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앞으로의 여정들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문득 ‘미얀마’라는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2학년 1학기 초 우연히 ‘The Road to Mandalay’라는 노래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사람마다 음악적 취향과 감상이 다르겠지만, 난 그 노래가 담고 있는 특유의 한없이 우울한 감성과 울적함, 막막함이 좋았다.

The Road To Mandalay

도대체 만달라이라는 곳으로 가는 길에 무슨 일을 겪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기에 저런 내용을 말할 수 있을까 막연히 궁금했다. 네이버에 Mandalay라 검색하니 미얀마의 도시란다...! 미얀마... 미얀마...! 한때는 버마라 불린 곳. 아웅산 수지. 불교. 여러 키워드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흔하지 않은, 마치 금단의 장소 같았다. 단지 내 마음을 움직인 하나의 노래 덕분에, 미얀마에 대해 아는 건 많이 없지만 이유 없는 설렘과 기대, 환상을 가지게 됐다. 미얀마를 정말 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인천에서 싱가포르로 향하는 편도 항공편만 구한 뒤였다. 출국 이틀 전에야 미얀마에 입국하기 위해선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면 가고, 안되면 말자는 생각으로 좀 대책없이 일단 싱가포르부터 가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인터넷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는 E-visa의 존재를 알아차린 덕분에, 안심하고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3 6/22 수

아침에 일어나서 비자 신청을 마저 해야 했다. 컴퓨터가 너무 느린 탓인지 카드회사 문젠지 모르겠지만 결제하는 과정에서 며칠간 에러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했으나 너무 졸려서 알람 2개를 삭제해버렸다.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컴퓨터로 결제를 했다. 시간이 촉박했고 긴장됐지만 시간 내에 준비를 다 마치고 평택버스터미널로 출발했다. 엄마와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조심히, 잘 다녀오거라. 버스에 오르고, 엄마와 인사를 나누었다.

#4 KLIA -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서

한국에서 쿠알라룸푸르(KL)까지 오는 동안엔 비행기에서 쭉 자느라 별게 없었다. 다만 KL이라는 도시에 처음 왔다는 이유모를 흥분이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 이제 이곳에서 두 시간 가량 버틴 뒤 환승을 해야 했다. 공항을 쭉 둘러봤다. 아시아에선 인천공항이 젤루 크고 멋질거라고 생각했는데 KLIA(Kuala Lumpur Int'l Airport)도 매우 세련되고 커서 깜짝 놀랐다. 배가 고파서(기내식 신청을 안 해서) 푸드 코트에 가서 뭔가 말레이시아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나름 이번 여행 첫 끼니인데 말이다!

이번에도 날개 위 자리라서 신났다. (예전에 비행기 기체에서 가장 튼튼한 부분이 날개 부분 좌석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단순히 날개 쪽 자리를 선호한다.) 더군다나 창가 자리! 창가에 앉으면 경치도 잘 보이고 창에 얼굴을 맞대고 밖을 초점없이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아싸! 그렇게 비행기는 이륙했다.

구름 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진짜 아름답다. 여태껏 이렇게 환상적인 일몰을 본 적이 없다. 어둑해지는 이 땅과 달리 빨갛게 타오르는 저 지평선 너머의 곳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너무 멋지고 아름답다. 휴대폰을 다시 켜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카메라를 켜서 카메라 렌즈로 그 풍경을 저장하느니 그 시간에 내 두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오롯이 느끼고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우리는 ‘사진’이라는 도구가, 눈으로 보는 실제 모습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순간의 벅찬 감동과 느낌까지 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와아아앙 도시의 불빛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싱가폴인가!!! 싱가폴의 밤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게 이렇게 감동적이라니... 바다도 여러 선박들이 켠 불빛들로 아주 환하다. 무사히 도착했다! 야호 으어어어어 근데 어두워

비행기에서 내려서 Immigration card도 쓰고 다 마치고 나온 뒤 바로 Singtel 유심칩을 샀다. 7일을 싱가폴에서 머무를 예정이라 유심 5일권 vs 10일권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직원의 적극적인 설득과 4GB vs 14GB라는 압도적인 수치상 근거로 10일권(30달러)를 구매했다.
이제 도심으로 이동해야한다. 원래 셔틀버스를 타려 했는데, 데스크로 가니까 차가 방금 출발했으니 그냥 기차를 타는게 낫지 않겠냐고 하신다.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Train to City 이정표만 바라보고 걷는다. 터미널 1에서 2로 스카이라인을 타고 이동해야했다. MRT 스테이션에 도착하니 머신 앞에 한국인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새로운 교통카드를 구할 수는 없는, 그냥 충전용 기계였다. 우리 셋 모두 어떻게 아예 새 이지카드를 구매해야하는지 헷갈려하는 눈치였으나 말을 걸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한국인에게 한국어로 질문하는게 뭔가 민망했다. 그 땐 그랬다ㅋㅋㅋ 대신 청소 아주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카운터로 가랜다. 갔다. 샀다. 탔다. ㅇㅋ

차이나타운 역에 내려서 A출구로 나왔다. 이 곳 분위기 진짜... 매우 놀라웠다. 나(=인간 네비게이션)의 놀라운 공간지각 및 위치감각으로 스미스스트리트에 당도했다. 간판이 다 중국어로 쓰여 있다. 너무 활발하고 신난다. 로얄 호스텔로 가야하는데, 음 도통 보이질 않는다. 길거리의 상인 아저씨들과 행인 몇 분께 여쭤봤는데 아무도 몰랐다. 여러 시도 끝에 숙소를 찾아 올라갔다. 프런트에 따로 사람이 있진 않고, 늦게 체크인하는 사람 명단이 숙소 문 비밀번호와 함께 종이에 쓰여 있었다. 더운 와중에 문이 열리지 않아 막막했지만 안에 있던 친절한 투숙객이 문을 열어주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것은 평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불편할 줄로만 걱정했는데 의외로 아늑했다. 내 자리는 2층이어서 2층에 가방과 짐을 풀었다.

짐을 놓고 폰을 약간 충전시킨 뒤 거리로 나와 사진도 찍고 싸돌아댕겼다. 가게들이 문을 닫아가고 있던 중이라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1달러 할인하는 환타를 사서 깨환(깨달음의 환타)에 만족하던 찰나 마침내 숙소 바로 아래층 식당 종업원 누나가 오라고 유혹(?)하셨다.

"Where are you from?"
"워 스 한궈런."
캬... 영어로 물어봤는데 쓸데없이 중국어 아는척 해버리기~

한국에서 왔다니까 이민호를 언급하며 잘생겨서 한국 사람을 좋아한댄다. 음 아마 내 얘긴 아닌 모양이다. 그냥 ‘잘 생긴’ 한국 사람이 좋다는 거겠지ㅎㅎ 8ㅅ8 슬펐다. 6.8 달러짜리 국수를 시켰다. (여기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메뉴판 가격엔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중에 계산할 땐 거의 9달러를 내야했다. 6.8 보고 들어간건데...내 2달러...) 진짜 맛있었다. 혼자 영상을 찍으며 놀았다. 재밌었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올라와 내일 아침 친구들을 맞이할 생각에 설레고 기다려졌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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