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던 3월을 지나보내고 문득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미 봄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겨울옷은 옷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햇살, 풀 냄새같은 것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작은 카드보드 상자 안에 있던 집 앞 고양이도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집 주변고 색깔을 되찾기 시작하고.. 그렇고 그런, 코에 바람 들어가는 이 화창한 봄의 날들. 언제나처럼 졸업반에게 여유는 쉽사리 찾아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이런저런 곳에서 담아온 봄의 느낌들.

사월의 어느 날, 부상을 당하고 반년 만에 자전거를 타던 어느 날 길에서 프랑스 여행자를 마주했다.

카우치 서핑과 웜샤워 쪽지를 수없이 보냈음에도 그 누구로부터도 답을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낸다는 그를 우연찮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내심 첫 번째 호스팅이 흥분되고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 유례없이 바쁜 봄날에 잠깐 노다닐 수 있는 변명거리가 생겨 무척이나 기뻤다고.

이런저런 paperwork가 끝나고 친구를 경복궁으로 데려 갔다. 실은 홍매화 보러 창덕궁에 가고 싶었는데..ㅋㅋ 그래도 좀 더 유명한 랜드마크니까 경복궁으로. 광화문 초입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곳에도 봄이 피었네.

나무가 좋다는. 때로는 소나무 송진을 약지에 묻혀 냄새를 맡고 다니기도 한다는 그는 '전통 한옥은 못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심있어 했다. 그는, 모든 나무를 끼워맞춘 우리식 가옥을 짓고 싶어 한다고.

그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부터 콜롬비아까지,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타히티, 타리티에서 호주, 호주에서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부터 일본.. 을 완주했고 지금 한국에 비자때문애 머무는 중이다. 다음 주면 중국 칭다오부터 고향인 프랑스 툴루즈까지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고 한다.

벚꽃이 활짝 피던 때라 경회루가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저 기와지붕 모서리 위에 있는 조각상(?) 개수에 따라서 건물의 중요도가 달라진다며?" 하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이 여행자는 운을 뗐다.

그리고는 '궁중의 내시들은 거기가 없었다' 같은 잡지식.. 을 전파해 주었다. ㅜㅜ

이것저것 보여 주고싶은 욕심에, 경복궁을 나와 설렁탕 한 사발 같이 먹고 다른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마티외의 예산, 몸 상태, 애매한 시간 등등.

사실 새로운 것을 본다는 것보다(새로운 것은 경복궁으로 충분했다) 그의 욕구는 바게트빵, 아이스크림을 부르짖고 있었다. 누구를 초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대접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필요를 이해하고 일정부분 충족시켜 주는 것이구나.

아쉬운 맘에 한 주가 지나고 나서 창경궁을 다시 찾아갔다. 봄엔 역시 바깥을 다녀야 하나봐... 분명 공부를 하자고 만났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뭘 먹고 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어딜 걷고 있다.

창경궁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아, 하루 종일 놀고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그러고 싶다..) 적당히 걷기엔 좋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고궁을 짱 좋아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몇 그루 없는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놀았다고 한다. ㅜㅜ 잘 가라 벚꽃잎들, 그리고 너 봄의 향기야.

계절마다 사진을 남기는 건 참 특별한 일인 것 같다. 벚꽃이 흩날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붉은 철쭉꽃이 만개하고 나무들이 푸르르기 시작해서다. 이런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너무 빨리 지나가는 봄이 원망스럽기도, 특히 깨끗한 공기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올해가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꽃은 다시 피고 따뜻함은 되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나는 즐겁게 중간고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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