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휴학을 하고 제주에 내려온 지 4일째. 가을의 제주 날씨는 정말 완벽하다. 첫 날 비가 온 이후로는 계속해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고 햇볕이 따뜻한 가운데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하다. 좀 더 지내봐야 확실해 지겠지만 10월에 제주에 오기로 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던 것 같다.

제주에 내려오며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제주 주변에 있는 작은 섬들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오늘은 왠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섬에서, 하룻밤쯤 묵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마라도에 가기로 했다

모슬포 항에 전화를 걸어 배가 운항하는지 확인한 뒤,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마라도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외딴 섬에서 홀로 묵을 생각을 하니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새로운 경험이 될거야..!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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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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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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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행 배를 매표하고 승선하기 전, 선착장 옆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반짝이는 바다를 느꼈다. 이리도 아름다운 바다를 이렇게 보고싶을 때마다 볼 수 있다니. 행복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바다 위를 달려, 납작한 섬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도착했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이 몰렸다. 사람들이 다 가는 마라도 초등학교, 비석을 지나 일단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기로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짜장면이고 뭐고 나중에....'

숙소에 짐을 풀고, 카메라와 삼각대만 가지고 나와, 홀로 마음껏 마라도의 가을을 즐겼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햇빛이 가장 긴 시간이 찾아왔다.

억새밭에서 아름다운 주황색 햇빛에게 작별을 고한 뒤, 바닷가로 가 돌 위로 비친 노을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어딘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적이 얼마만일까.

휴가 기간이 여름 겨울에 몰려있는 우리들에게 분명 마라도의 가을은 쉬이 겪을 수 있는 풍경은 아니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벅차올랐다. 이 황홀한 가을에 황홀한 억새들과 함께한다.

해가 기울어 바다 속으로 빠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배고픔도 잊은 채, 억새밭 곳곳을 누비며 빛과 황금빛 물결을 카메라에 담고 온몸으로 느꼈다. 아직도 이 날 바람을 기다리며 셔터를 누르던 순간의 적막함과 떨림을 온전히 기억한다.

바람과 함께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들은 지금껏 살아오며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가 되었다

황홀한 한 때를 보낸 후, 기쁜 마음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마라도는 적막 그 자체였다. 그 적막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숙소에 들어가니 곧 있으면 저녁이 준비된다고 하셨다. 그 곳에는 배를 타고 낚시 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가끔 새벽에 무늬오징어가 잡혀서 회를 떠 주기도 한단다. 그 날도 새벽에 무늬오징어 회 파티가 열렸단다.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지만, 스쳐가는 여행객에게도 그런 귀한 것을 나누다니! 마음만은 따뜻했다.

사실 마라도에 온 목적은 따로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섬에서 별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그날 밤은 흐렸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별 대신 아름다운 마라도의 가을을 마음껏 즐겼으니까.

다음날 일찍 배를 타고 모슬포로 향했다. 배를 타기 위해 나선 이른 아침의 마라도는 고요했다. 2015년 가을의 한켠에 이렇게 마라도의 모습이 새겨졌다. 비록 길지 않은 하루였지만 나에게 있어 더없이 풍요롭고 고요하고, 아름다우며 시적인 순간이었다.

안녕, 황금빛 억새가 출렁이는 마라도. 그리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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